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 06. 안가영

2024년 12월 19일

소개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는 AAD 워크숍과 연계하여 발행되는 웹진입니다.
AAD 웹사이트의 웹진 페이지를 하이퍼링크를 위한 장소로 마련합니다.
워크숍에서 실라버스로 압축하여 제시했던 호스트의 배움과 발견의 과정을 문서와 문서를 연결하는 하이퍼링크로 다시 펼쳐 웹에 배포합니다.

실라버스 

실라버스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구성한 문서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서로 어떤 것이 궁금한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 연결과 차이를 갖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AAD 워크숍에서 각 호스트는 ‘툴’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발견과 배움을 중심으로 실라버스를 구성하고, ‘툴’로 배움을 실천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포함합니다.

하이퍼링크

하이퍼링크월드 와이드 웹에서 ‘연결과 공유’를 만드는 주요 기능 중 하나입니다.
AAD 웹진은 워크숍 내용을 그대로 공유하기보다는, 이 기능을 적극 활용하여 ‘
연결과 공유(1)(2)’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합니다. 분산된 정보를 모아 가이드를 만들어 연결을 시도하고, 이를 공유하여, 방문자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하이퍼링크 가이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이드

06. 안가영
안가영은 세계 만들기 실라버스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워크숍 첫 회차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안가영
“안녕하세요. 안가영 입니다. 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현재는 게임을 매체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만들기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제가 게임 매체를 무엇으로 생각하며 작업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주로 고민했던 부분은 게임 안에 존재하는 행위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제작하는 데 있어 이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왔고, 게임 공간 안에 인간과 비인간 개체가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면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어떻게 이용하고 변형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만들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호스트, 안가영의 세계 만들기 실라버스는 게임이 가진 여러 특성 중 내러티브와 시뮬레이션 요소와 연결된 게임 매체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현선, 해우, 은정, 제이 님과 함께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세계 만들기(Worlding)’는 무엇일까요?

“세계 만들기, 월딩(Worlding)은 World에 -ing 접미사를 붙인 것처럼, 멈춰있는 세계가 아니라 역동적인 세계 만들기 입니다. 제게 월딩은 이성보다는 감성, 경쟁과 성장보다는 공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상황, 강력한 영웅의 존재보다는 작은 행위자들이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는 움직이는 상황에 주목합니다. 게임은 이러한 세계 만들기를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세계 만들기는 게임의 플레이 과정 안에서도 지속됩니다. 플레이어는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을 통해 게임의 규칙을 터득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가이드는 ‘안내서’로 번역됩니다. 그 의미와 같이 아래의 가이드는 툴에 얽힌 질문을 중심으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보았던 과정을 안내합니다. 워크숍이 호스트의 안내를 참고하여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고 서로 나누는 자리였다면, 웹진은 안내서를 웹상에 부여된 주소로 출판하여 배포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산책과 여행에서 가이드를 참고하듯, ‘게임 예술’에 대한 가이드도 각자의 질문과 관심사에 따라 방문하고 이탈하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를 만들고 배포해보길 바랍니다.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
06. 안가영

게임 공간 안에서 

게임과 내러티브

2000년대 초 미디어 학자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저서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게임에서 내러티브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내러티브와 시간은 3D 공간에서의 움직임(일상 속 움직임)과 일치한다. 방, 레벨, 단어를 통해 진행된다. 심리적인 공간에서 인물과 움직인 간의 심리적 긴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문학, 영화, 연극과 달리, 컴퓨터 게임은 주인공이 여정으로 시작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용과 싸우고 보물을 얻어 공주를 구하는 공간적 움직임을 통해 진행되는 전통적인 구성 방식을 취한다.”

 

Hero’s Journey Map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세계의 신화를 분석하여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서사의 형식을 묶어낸 지도입니다. 주로 개인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영화, 게임의 시나리오 구성에서 기본 공식처럼 사용되곤 합니다.

개인은 1) 평범한 세계에서 2) 모험의 소명을 받게 되고 그를 3) 거부하지만 4) 조력자를 만나 5) 관문을 통과하며 6) 시험에 들게 되어 적을 만나고 그러한 갈등의 과정에서 때로는 여신과 만나고 아버지와 화해하며 7) 동굴에서 통과의례를 치르고 8) 시련을 견뎌낸 후 9) 보상을 얻고 10) 일상적 세계로 복귀하지만 최종 악인을 만나 이를 해결하고 다시 11) 영웅으로 부활하여 12)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또 다른 여정을 떠납니다.

이러한 영웅의 여정 공식은 게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내러티브 구조입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 안에서 게임의 플레이어는 조이스틱을 통해 우리의 신체와 연결된 캐릭터를 움직여 공간에서 다른 공간을 경험하며 서사를 이어나갑니다.

어떤 게임은 이야기 자체보다는 개인이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목표를 위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생각하는 과정이 존재하지만, 목표는 생각의 과정이 아니라 영웅의 탄생에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습니다.

 

The Garden of Forking Path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 『픽션들』 에 실린 이야기 중 하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입니다. 소설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개인은 일직선에 놓인 시공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점점이 놓인 순간 안에서 선택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에서 선택한 미래와 선택하지 않은 미래 두 갈래로 가지가 분화합니다. 개인은 선택을 거듭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의 길을 보며 자신이 만든 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게임에도 여러 세계의 점으로 뻗어있는 인물과 이야기, 오픈월드 간의 상호작용이 생기면서, 플레이어가 조합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지처럼 생겨났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시간성을 흔들거나, 공간을 비틀어 이야기의 갈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게임의 시뮬레이션은 사용자의 인풋에 따라 아웃풋이 계속 변화하는 끝없이 갈라지는 인터랙티브의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 만들기

세계 만들기, 월딩이란 개념은 기술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저서 『트러블과 함께하기』 에서 빌려왔습니다.


해러웨이의 ‘세계 만들기’에 대해 말하기 전, 해러웨이가 확장한 SF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해러웨이에 의하면, SF는 공상과학이란 기존의 뜻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하고 변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에 열거한 SF 중에서 ‘사변적 우화’와 ‘실뜨기’는 이야기 짓기, 즉 세계 만들기의 실천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러웨이의 ‘세계 만들기’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구상의 얽히고 설킨 서로 다른 종들, 인간과 비인간의 실뜨기 놀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패턴을 주고 받으며 엮어가는 과정 속에서 사변적 우화가 만들어지며, 이는 부분적인 세계 만들기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세계 만들기를 통한 이야기는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 또는 패러다임을 뒤집고,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시도하며, 대안적인 세계를 재형성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허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체들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물질과 경험을 주고 받으며 엮어가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워크숍에서는 디지털 게임을 통한 세계 만들기를 시도했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호스트와 참여자, 인간과 기계(게임 소프트웨어), 그것을 구동시키는 노트북과 강의실 현장, 디지털 게임 오브젝트와 개개인의 상상 또는 경험 등이 서로 부딪혔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창발된 사변적 이야기들을 유니티 엔진(Unity Engine)이라는 디지털 게임의 세계에 펼쳐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선택의 가지 안에서

게임과 선택

예술의 매체로서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그동안 게임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부터, 게임을 내러티브를 중요시하는 영화나 소설과 접목시키는 관점, 컴퓨터라는 매체와 함께 등장한 완전히 새로운 시뮬레이션의 예술로 보는 관점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시뮬레이션이라는 두 요소 모두 게임 예술에서 중요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이미지와 서사가 게임의 메커니즘에  부합할 때, 그리고 게임이 말초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내재한 경험적 매체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게임이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의 선택, 클릭과 키보드를 누르는 행위가 게임 속 인과 관계에 반영되어 상황을 변화시키고, 그 선택이 플레이어의 내면의 갈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문명 시리즈의 제작자 시드 마이어(Sid Meier)“게임은 흥미로운 의미있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편, 게임 디자이너이자 이론가인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는 “플레이어가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다시 돌아가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는 운명이나 비극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햄릿의 딜레마’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소설 속에서 우리는 햄릿이라는 주인공에 몰입하여 응원하고 동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와 같은 선택지를 모두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게임 안에서 운명 또는 비극을 이야기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

 

Ultima IV

1985년 출시된 롤플레잉 게임 울티마 IV: 아바타의 길 입니다.울티마IV의 게임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던 리처드 개리엇(Richard Garriott)은 본 게임을 통해 ‘아바타’라는 개념을 갱신합니다.

울티마 시리즈의 전작은 용사가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영웅적 스토리였고, 당시에 유통되던 게임들은 선한 영웅 또는 악한 영웅이든 아무 이유 없이 캐릭터를 죽이거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죽이는 행위 자체의 윤리를 아무도 묻지 않았죠. 게임 세계는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현실 사회의 구조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울티마4는 악이 사라진 세계에 소환된 플레이어는 8대 미덕을 알아가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세계의 주민과 대화하고 사원에서 명상하는 행위 등, 스스로 게임 세계를 탐구하며 정직, 동정, 용맹, 정의, 희생, 명예, 영성, 겸손의 미덕을 체화하여 정신적 해탈이라는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8가지 미덕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게임의 종료를 알리며 원래 세계로 회귀한 아바타가 그동안 얻은 깨달음은 곧 플레이어의 깨달음이 됩니다.

소설에서 독자가 스토리텔링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적 경험을 통해 아바타가 됩니다.

 

September 12th

2003년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가 개발 및 출시한 News Game 또는 Serious Game으로 분류되는 September 12th: A Toy World 입니다.플레이어는 미사일을 쏘는 테러리스트를 암살해야 합니다. 문제는 테러리스트가 민간인 사이에 숨어있고, 민간인의 죽음 없이는 테러리스트를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테러리스트의 암살에 수반되는 민간인의 죽음은 애도와 분노를 낳고, 분노한 민간인 생존자는 테러리스트가 됩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폭력의 재생산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플레이 하지 않음을 선택하기’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Papers, Please

2013년 루카스 포프(Lucas Pope)가 제작 및 출시한 인디 게임 Papers, Please 입니다.플레이어는 공산주의 국가 아스토츠카의 국경 지대 입국 심사관으로, 국경을 통과하려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제출 서류를 심사하고 입국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심사한 서류의 개수만큼 많은 돈을 벌고, 이 돈으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여러 목적과 사정을 가지고 입국하려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며, 선택에 따라 페널티 또는 베네핏이 부여되므로 플레이어는 스스로의 양심, 원칙, 명분, 사상 사이에서 고민하며 심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This War of Mine

2014년 11 bit studios에서 제작 및 출시한 게임 This War of Mine 입니다.플레이어는 내전으로 인해 혼란과 무정부 상태에 놓인 국가에서 승리를 이끄는 군인이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받는 민간인 캐릭터의 입장에서 플레이합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약품을 구해야하며, 저격수와 약탈자를 피하기 위해 경계하고 도망쳐야 합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전 시간대로 돌아갈 수 없으며, 한 번 죽은 동료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Undertale

2015년 토비 폭스(Toby Fox)가 제작한 인디 게임 Undertale 입니다.플레이어는 인간 대 괴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괴물을 봉인해둔 지하 폐허에 떨어진 인간 소녀로, 폐허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플레이어는 폐허를 탐험하며 다양한 괴물과 만나게 되고, 괴물과의 대화를 통해 탈출에 얽힌 비밀과 힌트를 얻습니다.

적으로 간주되는 이들의 세계 안에서 탈출은 ‘죽기 아니면 죽이기’ 라는 이분법적 선택 대신 괴물과의 대화나 자비를 선택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공격만을 선택한다면 몰살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은 당신의 선택을 기억하고 리셋 회차에서 인과율을 부여합니다. 세계 만들기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McDonald’s Video Game

2005년 Molleindustria에서 제작 및 출시한 플래시 게임 McDonald’s Video Game 입니다.플레이어는 맥도날드의 경영자로, 재료 수급과 직원 채용,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며 ‘많이 팔기’를 지속해야 합니다. 게임은 햄버거의 판매를 통한 부의 축적, 가게 확장이 아니라 ‘햄버거’에 연결된 여러 윤리적 지점을 끌어들입니다.

패티의 재료인 소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소에게 유기농 또는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일 것인지, 직원의 임금을 어떻게 조정하고 삭감할 것인지, 보다 효율적인 광고를 위해 윤리적 선택을 할 것인지 등의 선택과 이야기 구조를 경유하며 햄버거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사유하게 만듭니다.

 

The Stanley Parable

2013년 데이비 리든(Davey Wreden)이 개발한 The Stanley Parable 입니다.플레이어는 한 회사에서 직원 427로 근무하는 스탠리라는 인물로, 직원 427에게 할당된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내려오는 지시대로 키보드 버튼을 누르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어느날 지령이 내려오지 않고 모든 직원이 사라진 상황을 맞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사무실을 벗어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처한 상황을 알려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안내하는 나레이터는 플레이어가 그 안내를 따르거나 무시하거나 이탈하는 선택을 하도록 만듭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주어진 과제에 도전하기보다는, 게임의 소프트웨어적 장치인 나레이터와 대화하며 스탠리에 동기화 되다가도 스탠리를 조종하는 현실 속 자신을 인식하길 반복하며, 게임의 허구적 세계와 나레이션이 제시하는 이야기 구조를 깨뜨리길 시도합니다. 사실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의 매체성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

 

 

다른 세계 만들기의 가능성

세계를 담는 가방으로서의 게임


SF 소설가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은 「
소설의 캐리어백 이론」 에서 소설을 영웅의 승리나 정복의 서사를 전하는 것이 아닌, 사소한 것들을 담고 나르는 자루나 가방에 비유합니다. 르 귄에 의하면, 소설은 “약 보따리이며 그 속에 담긴 것들은 서로와, 그리고 우리와 특별하고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담는 가방으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면, 게임은 어떠한 장면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게임이 ‘세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가방이라면 우리는 그 가방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요?

Chat GPT로 르 귄의 「소설의 캐리어백 이론」의 한 구절을 넣어 만든 이미지 (이미지 제공: 안가영)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세계를 만들기 전에,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지구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인벤토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상상해봅시다. 무엇이 들어있나요? 총? 스마트폰? 씨앗?

 

함께 세계 만들기 

세계 만들기 워크숍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과정에서 창발된 사변적 이야기를디지털 게임의 세계로 펼쳐낸 네 가지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Thank You>, 최은정

낯선 여행지에서 스쳐가는 은인에게 서로의 언어가 달라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음에 안타까웠던 적이 있는가. 글자를 모아 외계인에게 감사함을 전하자!

 


<보통의 보드 게임>, 윤현선

주인공인 ‘마법 견습생’은 세계 안에서 비생산적으로 돌아다니며 다른 이들과 한 공간에 위치해 있음에도 연결되지 못한(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공간을 무작정 돌아다니는 동안 몬스터 (환영받지 못하는 대상들), 평범한 학생들, 그리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대상들 (물, 바람, 나무 등)과 접촉하게 되는데, 이때 대화를 나누거나 선물을 주고 받으며 주인공 캐릭터는 새로운 연결지점들을 만들어 나간다.


<전염 게임>, 박해우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일상속의 마주침들. 그들을 나의 색깔로 전염시키자!
필드에 놓여진 사물들을 지나다니면서, 플레이어는 주변 사물의 색을 흡수한다.
플레이어 또한 규칙적으로 자신의 색을 주변에 전염시킨다. 게임은 모든 사물의 색이 동일해지면 끝난다.


<미소녀가 되자! 슬라임 월드>, 김제이

미소녀와 미소녀가 아닌 존재로 이분되는 슬라임 세상에 떨어진 평범한 인간 주인공. 어쩌면 나도 미소녀가 되고 싶었을 지도?
슬라임들에게 말을 걸어 미소녀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월드 이곳 저곳에 떨어져있는 미소녀 머리카락을 주워모은다. 머리카락을 충분히 모아서 오면 미소녀로 만들어주겠다는 계약…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현실 문제에 관여하기

게임 안팎의 현실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 Play2Act는 게임 개발과 생태주의의 연결성에 주목하며 게임 개발자들의 기후 위기, 환경 보호를 비롯한 젠더, 정치, 타자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와 참여를 독려합니다.

개발자들은 서로에게 설문을 주고 받습니다.
게임 개발의 영역 안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게임, 게임 플레이와 개발이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게임이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게임은 대안적이고 탈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만들 수 있을까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삼체

리우츠신 원작 소설,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삼체에서 난제로 간주되는 외계 행성의 삼체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시뮬레이션 도구로 VR 게임이 제시됩니다. VR 게임을 통해 주인공은 해결이 불가능한 기후 위기에 봉착한 행성에서, 행성의 거주민을 살릴 수 있는 해답을 고민하며 다양한 방법을 시뮬레이션 합니다.

게임과 삼체가 묘사하는 상황은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세계의 과학자는 인간이 기후 위기의 해결책을 찾는 속도보다, 자연 환경의 붕괴 속도가 더 빠르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답이 없는 난제를 포기하는 대신 시뮬레이션을 통해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 산업도 환경 오염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디지털 기기를 다뤄야 한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이 매체를 어떤 방향으로 다루는 것이 조금이라도 환경 문제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Fate of the World

2011년 Red Redemption에서 개발하고 Soothsayer Games에서 출시한 시뮬레이션 게임 Fate of the World 입니다.플레이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창설된 세계기구의 의장으로, 세계 각국에 요원을 파견하여 산업, 환경, 기술 정책을 수립 및 추진하여 인류를 보호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관점을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차원으로 전환하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Frostpunk

2018년 11 bit Studios에서 출시한 시뮬레이션 게임 Frostpunk 입니다.플레이어는 빙하기 이후의 디스토피아적 지구의 지도자로, 생존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번영시켜야 합니다. 영하 120도 내외를 넘나드는 혹한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석탄 연료를 활용하여 자본을 창출하고 대도시를 만들기보다는 혹한기의 기후 환경 안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안가영 작가가 제작한 시뮬레이션 게임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입니다. 앞서 언급한 시뮬레이션 세계관과 문제 의식에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이 초래한 아포칼립스적 미래 안에서, 인간, 비인간 NPC는 쉘터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합니다. 플레이어는 공간을 탐험하고 NPC에 주어진 내러티브를 파악하여 각 개체 간의 관계에 개입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며 관계를 형성합니다. 선택에 따라 관계의 결말은 달라지며, 살아남기의 전술은 곧 삶에서의 관계를 함께 잘 가꾸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솔라펑크

솔라펑크(Solarpunk)는 “사변소설, 예술, 패션, 사회운동 등에서 지속 가능한 문명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탐색하고 이를 체화하려는 운동”입니다.

솔라펑크는 “전술의 다양성을 포용합니다. 솔라펑크가 되기 위한 올바른 한 길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에, 세계의 다양한 공동체는 이름 짓고, 생각을 채택하고, 스스로 지속 가능한 혁명의 작은 네트워크를 구축” 합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 상상, 이야기, 관계에 세계와 지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의 수사학

실패의 미학

다양한 창작물 중, 고통스럽고 슬픈 실패의 이야기를 담은 것들이 있습니다.

게임에서 실패는 내러티브 측면에서 실패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플레이어가 실패를 하게 만드는 구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스퍼 율(Jesper Juul)의 저서 『The Art of Failure』 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에서
–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를 회피하고
–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실패를 경험하며
–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회피하는 것을 경험할지라도 게임을 다시 찾습니다.

이러한 게임에서의 실패의 역설은 비극적인 소설, 영화, 연극과 같은 고통스러운 예술이 우리를 슬프고 두렵고 역겹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역설과 같은 맥락을 공유합니다.
–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상기시키는 상황을 찾지 않고
– 사람들은 어떤 예술에 대한 반응으로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지며
– 그러나 사람들은 내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상기할 예술을 찾고 있습니다.

성공은 우리가 조작하는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실패는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전략과 변주를 통해 얻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테일과 깊이를 볼 수 있는 세계입니다. 게임에서의 실패는 우리가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으로, 우리는 게임이 어떻게 우리를 성장시키는지 고려하며 사용해야 합니다.

 

게임 규칙과 실패의 고통

앞서 우리는 실패의 역설은 비극의 역설, 예술에서 고통의 역설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게임에서의 실패는 역설로 작용하고 있을까요?

게임은 무한히 재도전이 가능하며, 게임에서의 실패는 궁극적인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게임에서 우리의 실패에 의한 결과값은 캐릭터에 반영되며, 비극적 게임의 경우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성공하곤 합니다.

게임은 명백한 보상도, 명백한 벌칙도 주지 않으며 다만 계속 플레이할 자격을 줍니다. 같은 임무에 대한 실패를 거부할 자격을 주기도 하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게임은 규칙과 시스템이라는 형식을 갖습니다.
실패의 규칙과 시스템 안에서 플레이어는 실패의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 장애물을 활용하여 게임의 균형을 맞추고
– 재미를 위해 일부러 서투르게 플레이하거나
– 성공의 윤리적/사회적 영향을 피하기 위해 서투르게 플레이하거나
– 게임의 다른 측면을 탐험하기 위해 서투르게 플레이하길 선택합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실패의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리는 선택 안에서
– 플레이어 스스로 새로운 목표를 도입하고
– 실패의 원인을 찾고 개선하며
– 그 개선을 위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고
– 재도전을 통해 게임 속에 설정된 상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Skate3

2014년 Electronic Arts Blackbox에서 출시한 Skate3 입니다.플레이어는 스케이트 보더가 되어 스케이트를 타면서 미션을 수행합니다. 스케이팅 스킬을 훈련할 수  있는 미션을 비롯하여, 플레이어가 스스로 캐릭터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캐릭터의 신체를 박살낼 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홀 오브 미트(hall of meat) 같은 오류와 글리치를 이용하여 수행하는 미션도 존재합니다. 본 미션의 수행을 위해 플레이어는 일부러 서툴게 캐릭터를 조종하며, 추락하고 넘어지는 실패를 즐기게 됩니다.

 

Goat Simulator

2014년 Coffee Stain Studios에서 개발한 시뮬레이션 게임 Goat Simulator 입니다.플레이어는 염소를 조종해 거리에 놓인 온갖 오브젝트를 부수고 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합니다. 기존 시뮬레이션 게임이 실제같은 세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면, 본 게임은 버그가 유발하는 황당한 장면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버그을 찾아내기 위해 염소 캐릭터를 마구잡이로 조종하며 부수고 끼이며 끌려가는 실패의 장면을 즐기게 됩니다.

 

Let’s Play: Ancient Greek Punishment

2011년 피핀 바(Pippin Barr)가 제작한 플래시 게임 Let’s Play: Ancient Greek Punishment 입니다.플레이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한 인물 시시포스, 탄탈로스, 프로메테우스, 다나이데스의 형벌과 제논의 역설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형벌에는 모순이 가득합니다.

시시포스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굴려 올려야하는 상황에
탄탈루스는 물을 마시려하면 물이 사라지고 주린 배를 채우려하면 음식이 멀어지는 상황에
프로메테우스는 저항할 수 없이 묶여 까마귀에게 심장을 파먹히는 상황에
다나이데스는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하는 상황에
제논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모든 캐릭터는 성공의 희망이 없는 상황 안에서 끝없는 실패와 투쟁을 반복합니다. 게임 플레잉을 지속하는 주요한 동기인 성공과 성취를 제거한 게임의 구조 안에서 플레이어는 실패를 느리게 경험하며, 실패만이 존재하는 구조, 상황, 세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임 이야기를 마치며

앞서 살펴보았듯이 게임의 구조 안에서 실패를 설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 안에 설계한 실패를 실패의 미학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요?

실패와 죽음 이후의 부활이 너무 쉬운 게임의 구조 안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죽여야 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면 좀 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시뮬레이션과 내러티브가 가진 힘을 생각해봅시다.
게임에는 가상의 왕국을 설계하여 은유를 부여하고 현재를 비판하는 힘이 있고, 가상의 이야기는 그저 가상의 세계에서 모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와 국회의사당 앞 시위
영화 「블랙 팬서」와 Black Lives Matter 시위
소설 『시녀 이야기』와 여성 낙태죄 반대 시위 등
이야기에는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게임은 정말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그런 게임을 만드는 일은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게임 매체로 어떠한 이야기를 설계하고 전달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하며 세계 만들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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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및 편집 | 안가영, AAD 백지윤
디자인 | AAD 방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