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하는 세계들: 미생물, 신화, 기억극장

2025년 12월 17일

여는 글: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

워크숍의 두 개의 축이자 제목이기도 한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는 각각 ‘미생물 배양’과 ‘기억극장’을 상징합니다. 이 두 단어는 어떤 방식으로 워크숍 안에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연결고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워크숍에서 단어들이 지니는 함의를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셀룰로스는 광합성이 만든 포도당이 모여 이룬 생명의 구조물이며, 이름부터 세포(cell)을 구성하는 당(-ose)이라는 뜻입니다. 식물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으로, 식물의 형태를 지탱하는 ‘뼈대’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셀룰로스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이를 영양분으로 소화할 수 없지만,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은 셀룰로스를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족의 신으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 아무런 기술도, 불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신들의 왕 제우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올림포스 산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줍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신들의 질서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기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고, 독수리가 날마다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하는 영원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워크숍의 맥락 속에서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확장됩니다.

셀룰로스는 미생물 배양을 함의합니다. 워크숍에서는 차(茶)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식물성 미생물과 협업하여 셀룰로스를 배양하고, 식물에서 나왔으나 동물의 몸을 닮은 “나의 비건 가죽”을 직접 가공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워크숍에서 주위 환경을 감각하는 방법론 중 하나인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Teatro della Memoria, 길리오 카밀로, 이탈리아, 1520년대)’을 상징합니다.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은 우주와 지구환경,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신화적 서사들로 구성되었으며, ‘프로메테우스’ 단은 7개의 단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 있습니다. 워크숍은 기억극장을 우리 주위의 환경을 탐색해 보는 방법론으로 제안하며, 셀룰로스가 만든 작은 세계로부터 우리 각자의 시간을 지구와 우주로 확장하여 사유해 보고자 했습니다.

웹진 ⌜발효하는 세계들: 미생물, 신화, 기억극장⌟은 이 두 축이 워크숍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전개되는 과정을 안내합니다. 먼저, 발효를 통해 서서히 자라나는 미생물의 세계를 관찰하며, 각자가 배양한 셀룰로스가 어떤 표면과 형태를 만들어 내는지 살펴봅니다. 이어서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을 하나의 사고 도식으로 삼아, 신화·기후·지형·이미지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스스로 배치해 보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미생물이 만드는 미세한 세계와 기억극장이 보여주는 우주적 스케일을 넘나들며, 각자의 감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우주’를 상상해 봅니다.

 


 

나만의 비건 가죽 만들기

워크숍은 소보람 작가가 명명한 ‘식물성 미생물 발효 가죽’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소보람 작가는 식물성 가죽을 매양하는 가상의 연구소인 〈스마트 스킨 팜〉을 운영해 왔는데, 이를 통해 비인간 존재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생체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식물성 가죽을 제작하는 작가의 행위는 사회가 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제 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연구소를 만들어 미생물을 배양해 봅니다. 따뜻하게 우린 차를 적당한 온도로 식히고, 차를 우린 물에 설탕과 발효액을 넣어 뚜껑을 닫아 3-4주간 발효의 과정을 거칩니다. 보이지도, 만져 지지도 않는 미생물들은 약 3주 간 우리와 같은 환경을 공유하게 됩니다. 미생물 역시 우리(인간)에게 쾌적한 온도의 범위 안에서 활발하게 성장합니다.
3주 동안 차를 먹은 미생물들은 액체의 표면에 얇은 막을 생성합니다. 이 막을 꺼내 망사천 위에 잘 말리면, 미끄덩 거리던 덩어리는 빳빳하고 얇은 ‘비건 가죽’이 됩니다. 이때, 미생물에게 주는 먹이(차)의 종류, 계절, 시간에 따라 미생물의 무늬와 두께는 각양각색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식물에서 나왔으나 마치 동물의 가죽의 형태를 띄는 비건 가죽은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생장 흔적을 지니는데, 작가는 식물성 가죽이 우리의 피부의 질감과 형태와도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기억극장-신화-미생물

미생물이 배양되는 동안, 주관적 우주를 상상하고 구성해 봅니다. 이를 위해 소보람 작가는 길리오 카밀로(Giulio Camillo)의 기억극장을 주관적 우주를 상상하기 위한 하나의 사고 도식으로 제안합니다. 그렇다면 기억극장은 무엇이며, 이 도식은 신화적 이미지와 미생물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어떻게 이어 주고 있을까요?

길리오 카밀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자이자 인문주의자로, 단순히 암기 기술을 넘어 인간 지성과 우주 질서를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기억극장을 설계합니다. 카밀로는 세계, 창조, 인간, 예술 간의 관계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상징 체계를 주요 참조로 삼아 지식과 우주 질서를 신화적 이미지와 인물들을 통해 구조화했습니다. 카밀로는 기억극장이 단순한 기억 도구가 아니라 우주를 축소해 놓은 코스모스 모델이자, 지식을 보존하고 탐구하는 아카이브로 기능하기를 바랐습니다.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

 

카밀로의 기억극장은 극장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극장과는 매우 다릅니다. 먼저, 관객이 무대 앉아 연극을 보는 일반적인 극장의 형태가 아니라 관객이 무대 중앙에 서서 관객석을 바라보는 구성입니다. 반원형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이 극장은 ‘관객’이 중앙에서 주위를 둘러볼 때 각 층마다 단계적으로 배열된 이미지들을 통해 지식의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7개의 수직 축과 7개의 수평 축으로 이루어져 49개의 구획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추상적·우주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1단에는 자연·물질·감각·인간의 삶 등 현실 세계의 이미지가 놓이고, 2-3단에서는 행성의 질서와 그 상징이 결합된 점성술적·신비주의적 체계가 배열됩니다. 이어지는 4-5단은 고전 신화와 영웅 서사가 자리하는 영역으로, 프로메테우스 역시 이곳에서 등장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불과 기술을 전한 존재로서 인간 지성·창의·문명의 기원을 상징하며, 기억극장에서 ‘지식의 진화’ 혹은 ‘기술적 계몽’의 핵심 인물로 배치되었습니다.

 

(위) 소보람,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 종이 위에 연필, 이미지 꼴라쥬, 800x600mm, 2024
(아래) 소보람, 〈기억극장: 미생물편〉, 종이 위에 연필, 이미지 꼴라쥬, 800x600mm, 2024

 

기억극장의 도식에 매료된 소보람 작가는 카밀로가 참조한 그리스 로마 신화 옆에 작가가 찾아낸 미생물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과 〈기억극장: 미생물편〉을 제작합니다. 카밀로가 기억극장의 형식을 통해 인간 지성과 우주의 질서를 도식화한 것처럼, 작가 역시 기억극장의 형식을 빌려 인간과 비인간, 신화와 미생물 세계가 뒤섞인 또 다른 우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기억극장: 미생물편〉은 카밀로의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 속 인명들과 1:1 대응을 이루며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미생물들의 이름이 병치되어 있습니다.

1:1 대응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미생물의 학명에는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수 인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학명을 지을 당시, 신화는 미생물이 발견되거나 혹은 살아가는 환경이나 특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징 체계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에 등장하는 불의 신 불카누스(Vulcanus)와 〈기억극장: 미생물편〉에 대응되는 미생물은 불카니사에타속(Vulcanisaeta)입니다. 초고온(80-90°C) 환경에서 생장하는 이 미생물에게, 불의 신만큼 적합한 이름이 있을까요?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의 프로메테우스 단과 대응되는 단에는 탄저균이 위치해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넨 신화를 연다면 탄저균은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자신을 옮기며 생존합니다. 또한 탄저균의 종명 안트라키스(anthracis)의 어원은 숯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낱말 anthrakis(ἄνθραξ)에서 나왔기에, 프로메테우스가 전해 준 불로부터 미생물의 어원이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큐리의 날개가 달린 샌들과 대응되는 플라스티스페어(plastisphere)는 기후 위기의 부산물로,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 안의 미생물 공동체입니다. 날개 달린 샌들이 길을 내는 것처럼, 미생물 역시 플라스틱을 자신의 거주지로 삼으며 생존의 길을 낸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버전 기억극장

 

소보람 작가는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의 활동의 일환으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장면들을 차용해 기억극장을 재구성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유럽의 신화인 만큼 낯설지만, 홍은영 작가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 덕분에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워크숍에서 소개한 기억극장 속 신들의 이미지 역시 이 만화의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사고를 확장하는 데 하나의 시각적 참조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기억극장: 미생물편(2024) 퍼즐 맞춰보기

 

먼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장면들을 기억극장 도식에 맞추어 퍼즐처럼 재구성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억극장의 각 자리에 해당하는 신화 장면을 하나씩 배치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도식의 맨 아래 기호 단에서 ‘토성’에 대응되는 칸에는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를 놓습니다. 사투르누스는 로마 신화에서 크로노스와 연결되는 인물이며, 영어 이름 새턴(Saturn)은 천문학에서 ‘토성’을 뜻합니다. 신화에서는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이들을 삼켜 버리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기호 단의 ‘달’에 대응되는 칸에는 달의 신인 다이애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여신은, 사냥의 여신으로 야생동물과 숲, 달을 관장합니다.

그 다음, 소보람 작가가 제작한 〈기억극장: 미생물편〉(2024)을 완성해 봅니다. 이때에는 작가의 도식을 참고하지 않고, 신화와 미생물 사이의 접점을 스스로 상상해 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투르누스의 옆에는 ‘오피투터스 타라에’라는 미생물이 배치됩니다. 이는 배를 심은 토양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로, 수확의 여신이자 사투르누스의 아내인 옵스(Ops)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농경과 관련된 토양에서 발견된다는 특성과 신화적 명칭이 맞물리며 두 요소는 자연스러운 대응 관계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다이애나와 대응되는 미생물은 무엇일까요? 야생 동물, 숲, 그리고 달을 관장하는 여신 다이애나의 옆 자리에는 ‘달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미생물’이 놓입니다. 다이애나가 달과 깊은 연관을 지닌 신이라는 점에서, 달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할지도 모를 생명체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¹

¹ 현재까지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달에서 미생물이 발견되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아폴로 임무 동안 달에 가져갔다 회수한 장비에서 검출된 미생물은 지구에서 유입된 오염으로 해석됩니다.

 


 

나만의 주관적 우주 만들기

이전까지는 길리오 카밀로와 소보람 작가의 기억극장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신화적 세계관을 탐색해 보았다면, 그 도식을 빌려 각자의 ‘주관적 우주’를 구성해 봅니다. 주관적 우주는 우리가 느끼고 감각하고 기억하는 모든 경험이 모여 형성되는 개인 고유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감각과 지각을 통과해 만들어진 이 세계를 상상해 보는 과정은, 곧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지각해 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서영, 〈만물극장〉, 2025

 

워크숍 참여자인 서영 님의 〈만물극장〉을 소개합니다. 서영 님의 〈만물극장〉은 개별적 사물들을 원거리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이미지처럼 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만물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맨 아래 단에는 나사가 직접 촬영한 행성 이미지를 두어, 각 행성의 표면을 하나의 기호(1단)로 삼았습니다. 〈만물극장〉의 Y축은 기호로부터 시작해서, 물(만찬, 연회), 땅(동굴), 포자(세 자매 괴물), 조직(파시파에와 황소), 동력(머큐리의 샌들), 마지막으로 문명(프로메테우스)으로 이어지며, 각 행성이 가진 표면과 기후를 상상하며 발생 단계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단인 ‘문명’ 단은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닌 위성 사진, 도시 밀집 지역, 지형 데이터 등의 이미지를 배치했는데, 이는 비인간적이면서도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적 결과물을 상징합니다.

 

 

〈만물극장〉을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봅시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만물극장〉은 행성을 기호로 사용하여, 행성의 이미지와 대응되는 풍경·지형·생물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에서 달의 여신 다이애나가 위치한 구역에는 달 표면 사진이 자리하는데, 〈만물극장〉 역시 달을 ‘가장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이미지’로 읽어 그에 상응하는 장면들을 1열에 구성합니다. ‘물’ 단에는 비가 온 뒤 강한 물살이 치는 철원 한탄강의 이미지를, ‘땅’ 단에는 화려하게 꿀럭이는 월출산의 바위를, ‘포자’ 단에는 바위, 나무 등의 표면과 맞닿아 퍼지는 지의류의 이미지를 배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에 위치한 ‘문명’ 단에서는 ‘터지는 느낌’을 가진 한라산의 위성 사진을 놓습니다.

우주를 카메라로 관측할 수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만물극장〉은 카밀로의 우주를 다시 구성해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술로 촬영된 행성 이미지와 직접 수집한 사진, 그리고 위성 데이터가 하나의 도식 안에 나란히 놓이면서, 주관적 우주를 기술과 경험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읽고 구성할 수 있을지 탐색하는 시도가 되었습니다. 서영 님은 이 과정이 기술로 인해 낭만을 상실한 듯 보이는 현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자, 다른 방식으로 만물을 연결하며 주변 세계를 행성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보람, 〈달콤한 나의 극장〉, 2025

 

소보람 작가가 제작한 〈달콤한 나의 극장〉은 기억극장의 구조를 ‘맛’과 ‘과자’라는 미각적 요소로 변환해 배치합니다. X축은 행성에 해당하는 신화적 기호를, Y축은 각 행성의 성질과 연결되는 맛의 층위를 기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행성의 상징과 신화적 배경, 그리고 과자가 가진 맛·형태·질감·이름을 서로 대응시키면서, 맛의 기억을 통해 개인적 우주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탐색했습니다.

〈기억극장: 그리스로마신화편〉의 ‘달’이 달의 여신 다이애나를 떠올리고, 〈만물극장〉이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달의 표면 이미지’를 대응시켰다면, 〈달콤한 나의 극장〉에서는 달을 형상화한 보름달 빵을 그 자리에 두어 달의 상징을 맛의 기억으로 치환했습니다. 2단부터는 달이 바다와 조수의 흐름을 움직인다는 과학적 사실에 주목하여, 오징어집, 꽃게랑, 고래밥처럼 해양 생물을 모티브로 한 과자들을 연결했습니다. 또한 달의 주기와 시간성을 상징하는 자리에는 보름달 빵을 재배치하여 달과 관련된 리듬과 감각을 맛의 구조 안에서 드러냈습니다.

 


 

 

닫는 글: 발효된 나의 세계

 

 

지구와 우주로 확장한 각자의 시간과 세계를 다시 셀룰로스가 만든 작은 세계로 되돌려 봅니다. 각자의 주관적 우주를 만드는 동안, 미생물은 발효를 거듭하여 하나의 막을 형성했습니다. 각자의 기억극장을 발표한 후, 참여자들은 3–4주 동안 함께 온도를 나누며 자라난 미생물막을 꺼내 건조시키고, 이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식물성 가죽으로 완성했습니다. 미생물과의 협업 과정은 워크숍의 또 다른 축인 기억극장과 나란히 놓이며, 인간과 비인간의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생성합니다.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이렇게 셀룰로스(미생물)와 프로메테우스(기억극장)를 교차시켜,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세계를 발효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신화 속 인물과 사건들은 미생물의 학명, 환경적 특성, 기후 변화의 징후를 거쳐 우리의 일상으로 연결됩니다. 배양한 미생물 가죽, 나사의 행성 이미지, 직접 촬영한 풍경과 지형, 혹은 맛과 과자처럼 개인적 기억이 깃든 재료들을 한 구조 안에 재배열함과 동시에 내 주변 환경을 이루는 것들을 감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신화적 세계관과 미생물의 생태, 기술로 보는 우주, 일상의 감각들이 겹쳐지며 각자의 ‘주관적 우주’를 만듭니다.

〈셀룰로스와 프로메테우스〉는 셀룰로스(미생물)와 프로메테우스(기억극장)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세계를 발효하듯 재해석하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신화 속 인물과 사건은 미생물의 학명과 환경적 특성, 기후 변화의 징후를 거쳐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배양한 미생물 가죽, 나사의 행성 이미지, 직접 촬영한 풍경과 지형, 그리고 맛과 과자처럼 개인적 기억이 깃든 재료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 배열해 보는 경험을 통해 주변의 환경을 더욱 면밀하게 관찰하고 감각해 보고, 나만의 주관적 우주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홍희진, 와중에, “아무도 아닌 자의 땅(no-man’s land)”에서 경작하기, 2024
윤원화, 환생을 위한 실험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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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AAD 박서진
디자인 | AAD 이혜림
도움 | AAD 김민아, AAD 박정은,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