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모임 비하인드 ⑤] 시각예술가 이산오 〈사유를 담는 매체들〉 – 1부

2023년 4월 21일

인터뷰 현장

 

AAD

이산오 작가님, 안녕하세요. 어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산오

흙과 종이, 흑연을 이용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시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책에서 소재를 찾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합해요. 직접 시를 짓기도 하고 연필 드로잉으로 초현실적인 화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AAD

‘삶과 죽음’이라는 어려운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산오

책과 산책이에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다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를 해두고 그걸 토대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요. 평소 저 스스로에게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태어나게 됐을까?’ 이런 사색적인 질문을 하곤 해요. 이 물음들을 계속 지니고 관련된 책을 읽어요.

AAD

책과 산책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아요. 두 가지 모두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책 읽을 때는 보통 가만히 앉아 있고 산책은 계속 몸을 움직이잖아요. 

이산오

책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산책은 먹은 것을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먹고 소화하고 만든 작업은 영양분이에요. 

 

이산오 〈강의 춤〉 2021 / 이산오 〈열쇠〉 2021

 

AAD

‘삶과 죽음’은 매우 현실적인 주제인데 작가님의 드로잉 작품은 초현실적이라 흥미로워요.

이산오

미술사에서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시점이 전쟁 직후예요.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 보면 때로는 나의 현실 감각을 의심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꿈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AAD

작가님께서 참여한 기획전 《Negative Platform》(2022, 중간지점)에서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다룬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어요. 작가님이 사용하는 매체인 흙, 종이, 흑연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산오

제 작업 주제인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은 갑자기 생겨난 고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생각이잖아요. 제가 사용하고 있는 재료들도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것들이에요. 흙은 인류가 처음 세상에서 무언가를 만들 때 선택한 재료이고, 종이와 흑연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했어요.
흙, 종이, 흑연은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이기 때문에 실존을 말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재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애정이 많아요. 그리고 공부를 하다 보면 기본 재료들 안에서 신비로운 발견을 많이 해요.

 

이산오 〈살〉 2023 / 이산오 〈편지〉 2023

 

AAD

작품에서 흙, 종이, 흑연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하나요?

이산오

저는 조형할 때 종이를 섞어서 흙을 만들어요. 그렇게 하면 섬유 성분 때문에 흙이 덜 갈라지고 조형하기 훨씬 쉽거든요. 페이퍼 클레이라는 기성품도 구할 수 있지만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요. 직접 흙을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서 도자 조형 방법론 관련 논문을 많이 찾아봤어요. 종이를 많이 섞은 흙은 조형할 때는 단단하지만 소성 과정에서 종이가 모두 불에 타 사라지기 때문에 소성 후에는 아주 가벼워져요. 종이는 유기물이기 때문에 불을 견디지 못하고 무기물의 흙덩어리만 남는다는 사실도 참 흥미로워요. 

AAD

일반적인 도자 조형 방식과는 다른 작가님만의 조형 방법이 신기하고 인상적이에요. 작업에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계신데 매체들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작가님만의 방법론이 있나요?

이산오

이전에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즉흥적으로 조합했어요. 무작위로 조합했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구 쏟아냈어요. 최근에는 적합한 구조와 배열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적인 요소를 생각하고 있어요. 디자인은 타인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구조를 짜는 요령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책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북바인딩을 공부하고 있어요. 책을 구성하는 문단의 배열, 여백, 장의 순서 등을 살펴보면 문학이 디자인을 만나 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시각 예술 작가로서 작품을 공간에 어떻게 설치하는 것이 좋은 구성인지 고민하면서 책과 전시의 연결지점을 탐구하고 있어요.

 

이산오, Installation view: 《Negative Platform》 (2022, 중간지점)

이산오, Installation view: 《상징적인 방 안에 들이기 기술》 (2022, 챔버1965)

 

AAD

작가님에게 책은 작업의 시작과 끝에서 모두 중요한 영감을 가져다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작가님은 학부 때 한국화를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도자를 공부하고 있는데, 도자를 새로 배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산오

한국화와 도자에서 사용하는 재료가 정말 비슷해요. 한국화를 채색할 때 사용하는 재료들이 자연에서 온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흙을 사용하는 도자로 바꾸면서도 물성을 다룰 때 어색한 거리감이 없었어요.

AAD

대학원에서 도자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산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계기는 공예가 세상과 밀접하게 닿아있기 때문이에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저는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요. 그 과정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내 세계에만 빠져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어느 날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라는 책을 읽었는데, 미술이 천재들만의 작업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무척 와닿았어요. 이후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렇게 도자를 배우게 됐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이: 이산오 시각예술가
텍스트와 이미지가 발생하는 구조에서의 유사성을 발견하며 다양한 창작 언어를 이해합니다.
시와 드로잉, 입체를 오가는 작업을 통해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각 매체를 서로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언어들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csmf001 @cosmof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