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
AAD
이경미 기획자님, 안녕하세요. 기획자님을 처음 만나는 분들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경미
저는 매개자예요. 예술가와 관객, 작품과 관객을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예술가의 작업을 잘 서포트 하고 중간에서 조정, 매개하는 것이 저의 중요한 고민이자 연구예요.
도시의 현상,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슈에 집중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예술을 매개로 드러내 공론화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저에게 관객, 대중이 참 중요해요. 그들과 함께 예술을 중심에 두고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해요.
AAD
동시대 사회 이슈 중 기획자님께서 현재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이경미
‘혐오’를 주제로 연구와 고민을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고 최근 도시연구 출판 프로젝트 CITY CRACK 연구서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질문 : 혐오와 이주의 시대, 당신은 자유로운가>를 발행했어요.
이 연구서로 제가 입주하고 있는 H아트랩 결과보고전 《하얀 벽의 고백》에도 기획자 겸 작가로 참여했어요. 기획자이지만 전시에 작가로서도 참여하면서 저의 연구를 드러내고 관객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질문 : 혐오와 이주의 시대, 당신은 자유로운가
‘혐오’ 연구는 《하얀 벽의 고백》 전시를 기획과도 연결돼요. ‘하얀 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회 안에서 너와 나를 가르는 크고 작은 ‘인식의 벽’이 만들어진 이유를 고민했어요. 우리 사회 안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이주민 외국인 혐오가 굉장히 확산되었어요. 사실은 그게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에요.
그 이전에도 2018년 예멘 난민 관련 이슈가 있었고, 이미 이주와 혐오는 서로 얽혀있었어요. 이동성, 이주에 관해 사회적으로 부딪혔던 것들이 늘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더 강하게 발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일련의 시대 변화와 혐오 감정, 사회 안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H아트랩 결과보고전 포스터
AAD
기획자님의 사회 이슈 관련 고민과 대중 관객을 중시하는 기획 태도가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게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경미
맞아요.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에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존 공공예술의 어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대안적인 프로젝트를 하고자 해요. 제가 바라보는 공공예술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공적 영역을 다루는 예술이에요. 사회 참여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넓은 의미로 공공예술을 바라보고 있어요.
기후위기, 도시 공동체, 마이너리티와 차별감수성, 집단 안에서 이뤄지는 개인 소외 문제 등에 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풍성한 장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과 함께 고민하는 거예요. 예술을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어요. 조형물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형태뿐 아니라 예술을 매체로 한 커뮤니티 프로그램, 연구, 아티클 발행 등 적합한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하려고 해요.
AAD
물리적인 작품 전시보다 커뮤니티 프로그램, 연구, 아티클처럼 형태는 없지만 내용이 우선시 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이경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조형성을 지닌 작품을 통해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많아요. 저 또한 그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고요. 공적 영역을 다루는 공공 예술은 널리, 많은 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해요. 그것을 한 번에 이룰 수는 없어요. “이런 고민을 함께 해볼래요?”라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번, 두 번, 나중에 열 번, 오십 번 메시지를 받으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텍스트로 된 메시지를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전하는 것이 제 선에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연구와 아티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뉴스레터 ‘PP PICK’의 아티클
AAD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져야 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 강한 지구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미
미술관 전시의 관객들은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전시를 보고 싶은 마음, 미술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굉장히 호의적일 수밖에 없어요. 공공예술은 사회 안의 첨예한 이슈를 말하기 위해 때때로 누군가의 삶 안으로 들어가요. 기획자와 예술가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섬세하게 접근하더라도 그 예술이 삶의 당사자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당연히 생겨요.
갑자기 어느 동네에 들어가서 예술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면 주민분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번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쉽지 않고, 공공 예술의 방법론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요.
AAD
예술로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말씀이 정말 공감돼요.
이경미
주민과 예술가 모두 준비가 필요해요. 우리가 생각하려는 지점이 공적 영역이라고 해도 결국 사적 영역도 함께 염두 해야 하잖아요. 그 영역은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어려운 게 당연해요. 예술가들이 작업하면서 기분이 상하거나 당황하는 경우도 있고요. 기획자가 중간에서 잘 조율하고 예술가를 보호하고, 설득이 필요할 때는 설득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생각을 할수록 더 어렵죠. 그래도 계속 접속하는 것이 중요해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연결하고 말하고 보여주면서 메시지와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해요.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오픈스튜디오 ‘OPEN MIND’ 프로그램 모더레이팅
AAD
예술로 사람을 매개할 때 언제나 매끄럽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중간자로서 역할을 잘 하는 것이 기획자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아요.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역량이 필요한데, 기획자님께서 가장 우선시 생각하는 역량은 무엇인가요?
이경미
기획자로서 가장 기본 역량은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매개와 연구 모두 글쓰기가 중심이 돼요. 예술 현장에서 작품을 충분히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전달하기 어려워요. 글을 통해 현장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층위까지 끄집어 내고 전달할 수 있어요.
예술 작품은 예술가분들이 워낙 전문적으로 만들어주시기 때문에 저는 텍스트로 의미를 잘 정리하고 그 의미를 적용할 수 있는 예술 이론, 사회 현상과 연결점을 만들고 전달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해요.
AAD
기획자님께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주제인 ‘혐오’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요.
이경미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포스트 코로나’, ‘이주’와 ‘혐오’에 초점을 두고 텍스트를 쓰고 설문조사를 진행했어요. 현재 연구 단계에 있고 아직 예술 프로젝트가 되지는 않았어요. 우리 삶, 우리 내면 안에 있는 혐오와 차별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얘기해야 해요.
예술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을 공론화하고 싶어요. 연구를 지속하면서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와 같은 예술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계획이에요.
혐오감정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많아요. 우리가 사회적 편견을 갖는 것이 완전히 이상한 건 아니에요. 사람은 취약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본능 때문에 나와 타자를 구분 지어요.
문제는 미디어나 행정 당국의 지침들이 혐오를 규제하지 않고 선동한다는 거예요. 혐오 표현, 혐오 범죄에 대해 제대로 카테고리화하지도 않고요.
혐오를 주제로 정치, 보건, 경제학자, 제3세계 독립 연구자분들과 함께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2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이: 이경미 독립기획자
9년간의 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후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며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현재 시각예술 연구 플랫폼 ‘퍼블릭 퍼블릭(PUBLIC PUBLIC)’의 공동디렉터이자 공공예술 프로젝트 ‘만아츠 만액츠(10000 ARTS 10000 ACTS)’의 큐레이터이며, 도시연구 출판 프로젝트인 ‘CITY CRACK’을 매해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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