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는 AAD 워크숍과 연계하여 발행되는 웹진입니다.
AAD 웹사이트의 웹진 페이지를 하이퍼링크를 위한 장소로 마련합니다.
워크숍에서 실라버스로 압축하여 제시했던 호스트의 배움과 발견의 과정을 문서와 문서를 연결하는 하이퍼링크로 다시 펼쳐 웹에 배포합니다.
실라버스
실라버스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구성한 문서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서로 어떤 것이 궁금한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 연결과 차이를 갖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AAD 워크숍에서 각 호스트는 ‘툴’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발견과 배움을 중심으로 실라버스를 구성하고, ‘툴’로 배움을 실천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포함합니다.
하이퍼링크
하이퍼링크는 월드 와이드 웹에서 ‘연결과 공유’를 만드는 주요 기능 중 하나입니다.
AAD 웹진은 워크숍 내용을 그대로 공유하기보다는, 이 기능을 적극 활용하여 ‘연결과 공유(1)(2)’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합니다. 분산된 정보를 모아 가이드를 만들어 연결을 시도하고, 이를 공유하여, 방문자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하이퍼링크 가이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이드
04. 주슬아
주슬아는 차원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실라버스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워크숍 첫 회차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주슬아
“안녕하세요. 이번 워크숍에서는 약 6년 동안 진행해온 작업의 매체와 방법론에 대해 그리고 해당 매체가 가진 매체 특정적, 사회적, 정치적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작업을 보신 분들은 제게 ‘활용하는 매체가 다양하다’고 말씀해주시는 편인데요. 저는 매체를 정해놓고 작업하기 보다는, 주로 어떤 개념에서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 개념에 적합한 매체를 고려하다 보니 다양한 매체를 다루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3D 영상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매끈해보이지만, 사실은 강도 높은 노동이 수반되거든요. 오류를 수정하고 메꾸는 일의 반복 안에서 오류와 글리치가 발생합니다. 현실의 물질을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이죠. 이렇게 오류와 글리치를 만들어내는 매체 간의 전이가 제게는 차원 이동처럼 느껴졌고 낭만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네 번째 호스트, 주슬아의 차원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실라버스는 4회차로 시간을 압축하여 함께 차원 여행을 떠났습니다. 사물에서 신체, 공간으로 경험을 확장하며 차원을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보는 것’을 의심하고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압축하는 시각의 한계를 자각해봤습니다. 워크숍에서는 혜연, 지현, 은류, 슬아 님과 함께 2D부터 3D 인쇄 매체까지 다양한 형식을 경유해 차원을 탐구하며 변환 과정에서 누락된 현실의 빈 공간을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잠시, ‘차원 이동’이란 무엇일까요?
차원 이동은 물리적, 인지적 그리고 상상적 경험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을 탐구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그리고 공간에 대해 인지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노력에서 출발합니다. 물리학에서는 3차원 공간을 넘는 다차원 우주 이론을 통해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차원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차원 이동은 다른 관점이나 차원으로의 전환을 의미하죠. 차원 이동은 세계를 다양한 차원에서 경험하도록 유도하여, 일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공간의 차원에서 감각을 확장하도록 합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차원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시각적 접근법을 통해 인식의 차원을 확장합니다.
가이드는 ‘안내서’로 번역됩니다. 그 의미와 같이 아래의 가이드는 툴에 얽힌 질문을 중심으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보았던 과정을 안내합니다. 워크숍이 호스트의 안내를 참고하여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고 서로 나누는 자리였다면, 웹진은 안내서를 웹상에 부여된 주소로 출판하여 배포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산책과 여행에서 가이드를 참고하듯, 차원 이동과 결부된 ‘3D 스캔과 출력’에 대한 가이드도 각자의 질문과 관심사에 따라 방문하고 이탈하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를 만들고 배포해보길 바랍니다.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
04. 주슬아
플랫랜드 주민으로 빙의하기
플랫랜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에드윈 A. 애벗(Edwin A. Abbott)이 1884년에 출간한 SF 소설입니다.
2차원의 세계 플랫랜드에 거주하는 사각형(Square) 씨가 다른 차원을 여행하며 경험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점 하나가 전부인 포인트랜드(Point Land)는 자기 자신이 우주이자 모든 것이며, 점과 선으로 구성된 라인랜드(Line Land)는 길이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선과 선이 연결된 면으로 구성된 플랫랜드(Flat Land)는 변이 많을수록 높은 계급을 가지며, 위 아래의 높이가 부여된 스페이스랜드(Space Land)는 깊이와 입체감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표현합니다. 플랫랜드의 주민 사각형 씨는 ‘환상‘을 이용해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떠나며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위 이미지는 친구의 사물을 평면 스캔하고 스캔한 이미지의 윤곽선을 기준으로 다시 입체화 한 작업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각형 씨처럼 평면 세계에 거주하는 인물이라고 상상해 볼 때, ‘갑자기 하늘에 3차원의 대상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었습니다.
우리는 3차원의 비행체가 평면의 세계에 나타나는 상황을 입체의 사물을 놓고 스캔하는 상황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맞닿은 면에 따라 다른 모양의 이미지가 인쇄될 것입니다. 이렇게 달라지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워 결별하기 보다는, 끊임없는 생각과 상상을 통해 천천히 다가가는 선택이 남아있습니다.
제록스
할로이드(Haloid) 사에서 개발 및 판매한 복합기 제록스(Xerox) 입니다.
1960년대부터 상용화 된 제록스는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대량 복제’라는 매체적 특성에 따라 정보의 생산과 보급, 관리와 체계 구축에 활용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 매체의 등장과 예술가의 작업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제록스도 마찬가지로, 개념미술 그룹전 《제록스 북(Xerox Book)》에서는 개념 미술의 기계적 생산과 확산의 매체적 방법론이 되었으며, 플럭서스(Fluxus)와 같은 예술 운동을 비롯해 1960년대 여성 권리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 환경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중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제록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복제와 공유 (1)
<모형 천엔 지폐 III>, 아카세가와 겐페이, 1963
제록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 겐페이 작가가 천엔 지폐를 실제 원본 사이즈 그대로 복사해 포장지로 사용했고, 일본 정부에서 해당 행위를 위법으로 간주해 고소했습니다. 1966년 도쿄 지방 재판소에서 ‘천엔 지폐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공판이 진행되었습니다.
재판장에서 겐페이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물로 여러 작품을 재판장에 늘어놓고, 이것은 왜 예술 작품인지 저것은 왜 예술 작품이 아닌지 논의했습니다. 여러 증거물 중 수십개의 빨래 집게를 몸에 매단 퍼포머도 포함되었는데, 판사가 퍼포머에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자, 증인석과 증거품이 놓인 자리 중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겐페이는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복제와 공유 (2)
무료로 3D 작업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블렌더(Blender) 입니다.
거대 자본, 대기업에서 독식하고 있는 3D 시장에서 자본과 기업가에 저항하고 무력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생각과 실천 아래 등장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접근 가능하고, 개발과 참여가 가능한 오픈 소스 프로그램 입니다.
블렌더의 예처럼 공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공유’와 ‘오픈 소스’라는 말은 다른 방식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구글 오픈 헤리티지(Open Heritage)의 경우, 식민 국가의 유물 스캔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열린 저장소는 원한다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캔 파일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구글의 승인(permission)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유물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화 된 문화유산이 누구에게 속하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고 결정하는 권력 구조를 드러냅니다.
복제와 공유 (3)
모레신 알라야리(Morehshin Allahyari)는 <Material Speculation: ISIS> 작업을 통해 공유의 위험성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알라야리는 ISIS가 공개한 영상 중, <King Uthal>을 비롯한 여러 유물을 파괴하는 장면을 보고 해당 유물과 관련한 방대한 데이터와 이미지, 연구 자료에 근거하여 3D 모델을 만들어 프린트하고 그 안에 관련 연구 자료와 과정 일체를 담은 메모리 카드를 넣어 공유했습니다.
여러 형태로 3D 모델을 제작했지만, 알라야리는 하나의 모델만 공유하기로 결정합니다. 모든 것을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서구의 대중과 기관 안에서만 독점적으로 순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ISIS가 유물을 파괴함으로써 역사와 유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서구 기술 기업 즉 실리콘 밸리는 그것을 재창조함으로써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알라야리의 말처럼, 공유의 위험성은 공유 자체가 아니라 공유의 문화를 자본주의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스캔
다시 차원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제록스와 같은 복합기는 접속 오류나 드라이버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3D 스캔이 가능한 어플리케이션이 개발되면서 스캔과 인쇄의 편의성이 개선되었습니다.
다만 입체를 평면으로 스캔하는 평판 스캔의 경우, 입체를 평면에 맞닿게 하기 위해 가하는 물리적인 힘에 의한 변형과 왜곡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모바일 스캔의 경우, 물리적인 힘의 영향 다시 말해 불안정성, 결함 없이 왜곡된 상을 만들어냅니다. 3차원의 입체가 마치 2차원의 평면인 척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가의 3D 스캔 기기는 접근성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폴리캠(Polycam)을 비롯한 여타 앱으로 핸드폰을 사용해 바로 내 눈 앞의 대상을 스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캔이라는 행위에서 ‘집 안’ 공간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물체는 집 외부에서 멀리 떨어져 외벽을 보고 인지를 했을 때 그제서야 집이라고 인지할 수 있습니다. 집 안에 머무를 때, 멀리 떨어져서 보지 않고서는 집을 물체로 인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집 외부 표면을 인지하지 않고서도 내부에 있는 상태로 집을 물체로 인지할 수 있는 매체가 3D 스캔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3D 스캔을 가장 많이 시도해본 공간이 집 내부 공간이라고 합니다. 집 외부의 표피가 사라지고 집 내부의 표면만 존재하는, 외부와 내부가 뒤집혀버린 상태의 사물이 된 것이죠.
3D 프린트는 레이어를 수십, 수백, 수천 장 쌓아서 입체를 만드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이 화석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공간을 압축하고 공간을 뒤바꾼 상태. 3D 스캔과 프린트가 그런 상태죠.
스페이스랜드를 상상하기
오감도
난해한 것으로 유명한 이상의 시, 「오감도」 연작 중 네 번째 작품에 대한 해석입니다.
평면을 입체로 상상하는 예시 중 하나입니다.
광주 과학기술원의 연구자가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가 도넛 모양을 가진 입체형의 전개도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전에는 오감도를 수직, 수평의 면으로만 이해했다면, 도넛 모양의 입체에서는 나선형의 수열로 구성된 궤도가 무한히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화자인 이상이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단하는 모습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계면의 정보로 내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 도넛 내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표면의 수열로 구성된 선은 내부의 상태를 진단하는 도구이며,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게 시인의 책무임을 묘사했다는 해석이 추가되었습니다.
표면의 환영성
평판 스캔
스캐너의 평평한 유리 표면에 대상을 직접 밀착시켜 이미지를 디지털화 하는 방식입니다.
대상은 스캐너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부분만 캡쳐되기 때문에, 접촉하지 않은 부분의 데이터는 제외됩니다. 예를 들어 책을 스캔할 경우, 책의 중심부나 굽어진 면처럼 스캐너 표면에 밀착되지 않은 부분은 흐릿하게 나타나거나 완전히 누락될 수 있습니다.
장점은 밀착한 부분의 디테일을 매우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해상도의 광학 센서가 색상, 질감, 밝기 등을 작은 디테일을 포착할 수 있어, 평면적인 대상을 스캔할 때 데이터 정확도가 높습니다.
다만 물리적 접촉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입체적인 대상을 스캔할 때, 한 면만 기록할 수 있으며 대상의 복잡한 구조나 내부는 캡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스캔 대상을 고정한 상태에서 작업해야 하므로, 실시간 스캔이나 유동적인 환경에서 사용이 어렵습니다.
모바일 스캔
스마트폰 같은 장치의 카메라를 활용해 대상을 디지털화 하는 방식입니다.
스캐너와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평판 스캔과 다른 점이며, 스캐너 표면에 밀착할 필요 없이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습니다.
장점은 이동성과 유연성입니다. 사용자는 카메라를 대상에 맞춰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스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큰 부피의 물체, 입체적인 구조물, 복잡한 형상을 가진 대상을 스캔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만 촬영 시 조명, 각도, 초점 거리와 같은 외부 환경에 따라 스캔의 질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어두운 환경에서는 디테일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카메라 각도가 적절하지 않다면 대상이 왜곡되거나 실제 비율과 다르게 보입니다. 또한 카메라 렌즈의 품질과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물리적 접촉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신 데이터 왜곡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3D 스캔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거나 레이저 또는 구조광을 사용하여 표면의 형상을 디지털화 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대상을 3차원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2차원 표면 데이터를 조합하여 3D 효과를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스캔 과정에서 대상의 각 면은 개별적으로 기록되며 스캐너는 표면의 굴곡, 높낮이, 질감 등의 정보를 기록합니다. 이후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를 모두 통합해 하나의 입체적인 형상을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굴곡을 보정하거나 매끄럽게 처리하여 현실 세계에서 보는 것보다 더 매끈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레이저 스캐너는 반사율이 높거나 투명한 물질을 스캔 시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유리나 금속처엄 표면이 빛을 반사하거나 투과하는 대상을 스캔할 경우, 데이터과 왜곡되거나 손실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스캔 과정에서 대상이 움직이면 데이터가 엉킬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3D 스캔을 통해 생성된 데이터는 대상의 모든 물리적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기 보다는, 컴퓨터가 생성한 입체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3D 스캔이 현실의 재현에 가까워보일지라도, 실제 데이터는 여전히 2차원 데이터의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페파쿠라
페파쿠라(Pepakura)는 3D 모델을 종이로 구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디지털로 설계된 3D 데이터를 평면 도면으로 변환합니다. 도면을 출력하고 오리고 접어 입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3D 프린팅만큼 정밀하거나 견고하진 않지만, 일상적인 재료와 도구로 3D 데이터를 입체로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DIY(Do It Yourself)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3D 프린터가 상용화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긴 어렵고 전문 업체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페퍼쿠라는 고가의 장비 없이도 스스로 3D 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플랫랜드로 이동하기
1983 미지와의 조우
2024년 KBS에서 4부작으로 제작된 아카이브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모던 코리아 3회의 부제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1977년 UFO와 외계인을 주요 주제로 삼아 제작한 SF 영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외계인 즉 ‘미지’의 대상은 공포와 의문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1983 미지와의 조우는 한국전쟁 30년 후, 한반도 상공 위로 떠오른 북한의 전투기, 춘천 캠프 페이지에 불시착한 중국 민항기, 남해안과 울릉도에 침투한 무장간첩, 미얀마 묘역의 폭탄 테러 등 ‘냉전과 반공주의’와 관련한 여러 기록 사이에 외계인과 UFO의 이미지를 반복 제시합니다. 영상을 따라가며 우리는 냉전 시대에 ‘미지’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덧씌워진 공포, 두려움, 조장된 위기를 볼 수 있습니다.
노멀 맵
3D 스캔 이미지를 보다 매끈하게 만드는 눈속임의 방법 중, 노멀 맵(Normal Map)이 있습니다. 다만 노멀 맵은 대상을 진짜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가짜임을 폭로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3D 그래픽에서 노멀 매핑은 모델링된 3D 모델의 표면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굴곡이나 디테일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 기술은 더 많은 폴리곤을 사용해 모델을 세밀하게 조형하는 대신, 텍스처 이미지에서 노멀(normal, 표면 픽셀의 방향) 정보만을 이용하여 가상의 빛과 그림자를 추가함으로써 복잡한 표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빛이 닿는 각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실제로는 없는 작은 굴곡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죠. 3D 객체의 디테일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소한의 폴리곤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래픽 처리 효율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특성에 의해 노멀 맵은 오로지 모니터 화면 안에서만 구현 가능하며,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노멀 맵의 위와 같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낼 때,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게 될까요? 매체가 노멀 맵을 통해 우리의 지각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면? 장한길 필자의 부재를 스크리닝하기: 임철민의 <야광> 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신체는 이동할 수 있는가
김대중 정권 시기, 일본 문화 개방과 함께 「강철의 연금술사」와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신체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공각기동대」 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의 정신은 완전히 기계화된 신체에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신체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하며, 정체성은 물리적 신체와 분리된 존재로 인식됩니다. 본 작품은 인간의 본질이 신체에 귀속되지 않고, 기술과 융합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휴머니즘에 가까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반면 「강철의 연금술사」 에서는 주인공이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을 사용하다 신체 일부를 잃고 그 빈자리를 기계로 대체합니다. 본 작품은 신체의 상실과 기계로 대체된 신체를 다시 회복하려는 과정을 통해 신체의 윤리성과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신체는 단순히 물리적 육체가 아니라 윤리성과 정체성 자체로 다루어지며, 기계로 대체된 본래 신체를 되찾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드러납니다. 이는 신체를 단순히 기능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과는 다른 인간 중심적 시각을 반영합니다.
글리치 페미니즘 선언
몸(bodies)이 그저 몸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입니다.
몸은 이름 붙이는 순간 그 몸이 특정 범주에 갇혀 규정됩니다. 다시 말해 몸을 어떠한 몸으로 정체화 하는 순간 우리는 그 몸을 어느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고 축소하며 제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죠. 몸은 정말 부여한, 부여받은 이름 그대로의 몸일까요?
저자 레거시 러셀(Legacy Russell)은 “이름 없는 몸은 무엇인가? 오류다”라고 답합니다. 식별과 정체화가 불가능한 ‘이름 없는 몸’은 오류와 혼란을 만들어내며 몸에 부여된 기존 개념을 해체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몸의 정치성과 정체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왔습니다. 몸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이전하고 AI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몸을 하나의 데이터로 축소하며 본질적 불완전함을 무시합니다.
3D 스캔 역시 세계를 매끈한 데이터로 변환하려 하지만, 살아있는 대상을 3D 스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몸의 유동성과 변화 그리고 윤곽의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기술적 오류는 단순히 기술적 결함과 실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러셀이 강조하는 글리치의 맥락에서 고정된 경계를 흔드는 가능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데스 마스크(death mask)를 떠올려보면 죽은 몸은 고정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살아있는 몸은 흐릿하고 흔들리는 이미지를 통해 그 복잡성과 생동감을 드러냅니다. 살아있는 몸은 고정될 수 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지니고 있기에 정체화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불완전합니다. 이처럼 이름과 윤곽으로 규정되지 않는 몸은 기존의 체계를 흔드는 오류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몸의 윤곽’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윤곽은 어떻게 생기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몸은 등가 교환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빈 공간을 찾아가기
슬라이싱 레몬
3D 스캔한 사물을 3D 프린터로 옮겨 출력하기 전 ‘슬라이싱(slicing)’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슬라이싱은 3D 프린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3D 프린터 슬라이서 프로그램은 3D 모델을 프린터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합니다. 3D 모델을 수평 단면으로 슬라이스 하고, 프린터가 이를 층층이 쌓아가며 출력할 수 있도록 G-code라는 명령어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슬라이서 프로그램을 통해 출력 품질, 속도, 세부 설정 등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이어 두께를 설정해 출력물의 정밀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얇은 레이어는 높은 정밀도를 보장하지만 인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두꺼운 레이어는 인쇄가 빠르지만 정밀도가 낮아집니다. 또한 내부 채움 밀도(infill)를 설정하여 출력물의 강도와 무게를 관리할 수 있으며 패턴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밀도가 높을수록 강도는 증가하지만 소재 사용량과 인쇄 시간이 늘어납니다.
슬라이서 프로그램은 출력물의 돌출된 부분을 지탱하는 서포트(support)를 생성하는 기능도 제공합니다. 사용자는 서포트를 자동 또는 수동으로 추가할 수 있으며, 서포트 밀도와 접촉면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프린팅 속도와 노즐 온도를 설정하여 출력 속도와 품질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재료에 따라 적절한 온도와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슬라이서 프로그램에서 이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슬라이서 프로그램은 프린팅 과정을 미리보기하는 시뮬레이션 기능을 제공하여 예상 시간을 확인하고 오류를 사전에 수정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슬라이서 프로그램으로는 Cura, Prusa Slicer, Simplify 3D, Matter Control, Idea Maker가 있습니다.
구글 어스
지구 안 세계를 3D 스캔 이미지로 볼 수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 입니다.
구글 어스와 같은 서비스는 지리적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교육 및 연구에 유익한 도구로 평가되지만, 서구 중심의 데이터 재현 방식과 권력의 불균형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세계의 디지털 스캔 이미지는 구글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소유 및 관리하며, 특히 3D 스캔 기능을 통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국가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제3세계나 비서구권 국가는 평면적인 이미지에 머물러 있으며 해당 지역의 지도와 이미지 업데이트 역시 서구에 비해 그 빈도가 낮고 정밀도가 떨어집니다. 이는 기술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을 반영하며 일부 지역이 디지털 지도 상에서 소외되거나 부정확하게 재현될 위험을 높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별적 데이터 접근은 비서구 지역을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앞서 언급한 구글 오픈 헤리티지와 구글 어스 같은 사례는 디지털 식민주의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디지털 식민주의는 디지털 공간과 환경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접근 권한과 데이터 소유 문제 등에서 불평등한 권력 역학을 비판하는 개념입니다.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특정 지역과 문화를 디지털화 하고 이를 소유하는 방식은, 기술 매체가 공적 기억과 서사를 형성하면서 특정 시각과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사례로, 비서구 사회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제한하는 디지털 권력 불균형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 2024. 주슬아 & Arts Acts Days All rights reserved.
작성 및 편집 | 주슬아, AAD 백지윤
디자인 | AAD 방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