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 05. 김윤익

2024년 12월 10일

소개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는 AAD 워크숍과 연계하여 발행되는 웹진입니다.
AAD 웹사이트의 웹진 페이지를 하이퍼링크를 위한 장소로 마련합니다.
워크숍에서 실라버스로 압축하여 제시했던 호스트의 배움과 발견의 과정을 문서와 문서를 연결하는 하이퍼링크로 다시 펼쳐 웹에 배포합니다.

실라버스 

실라버스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구성한 문서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서로 어떤 것이 궁금한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 연결과 차이를 갖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AAD 워크숍에서 각 호스트는 ‘툴’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발견과 배움을 중심으로 실라버스를 구성하고, ‘툴’로 배움을 실천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포함합니다.

하이퍼링크

하이퍼링크월드 와이드 웹에서 ‘연결과 공유’를 만드는 주요 기능 중 하나입니다.
AAD 웹진은 워크숍 내용을 그대로 공유하기보다는, 이 기능을 적극 활용하여 ‘
연결과 공유(1)(2)’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합니다. 분산된 정보를 모아 가이드를 만들어 연결을 시도하고, 이를 공유하여, 방문자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하이퍼링크 가이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이드

05. 김윤익
김윤익은 함께하는 큐레토리얼 실라버스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워크숍 첫 회차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김윤익
“안녕하세요. 김윤익 입니다. 창작자 중심의 공간 413 BETA와 작품을 소장하고 향유하는 페어 PACK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 실라버스는 우리가 예술 생태계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술 씬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어떻게 경험을 만들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기획을 해볼 기회가 부족한 현실과 여러 제약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획을 주도할 수 있을까요? 함께 방법을 모색하고 장려하며 ‘직업 규정’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상상하며 동력을 만들어봅시다.

다섯 번째 호스트, 김윤익의 함께하는 큐레토리얼 실라버스는 미술 씬에 드리운 구체적인 제약을 살펴보고 협력과 공생의 사이버네틱스를 구체화 해볼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가연, 소연, 윤서, 해빈 님과 함께 했습니다.

[표] 제약과 예술 활동의 상관관계, 413 BETA 제공


여기서 잠시,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 이상의 존재가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분명한 행위일 수 있지만, ‘함께 한다’는 행위를 커뮤니티에 대입해 구체화 해봅시다. 무언가에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모여 자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역할과 직업이 생기며 문화와 씬이 형성되는 모습으로요. 이는 어느 한 명의 개인이 중심이 되어 이끄는 형태가 아닙니다. 관심사를 기반으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무엇이죠.”
“이에 따라 큐레토리얼 앞에 붙은 ‘함께하는’ 이라는 말은 큐레토리얼의 시작점이 하나의 주제나 연구보다는 협력적으로 일하는 방식에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협력은 사람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다소 낭만적으로 들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무언가가 어디에서 촉발하고 무엇을 들여다봐야 하며 어떠한 호흡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개인-커뮤니티-미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2000-2010년대의 미술 씬의 모습과 여러 제약 안에서 형성된 실천 사례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함께하는’ 큐레토리얼이 무엇인지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가이드는 ‘안내서’로 번역됩니다. 그 의미와 같이 아래의 가이드는 툴에 얽힌 질문을 중심으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보았던 과정을 안내합니다. 워크숍이 호스트의 안내를 참고하여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고 서로 나누는 자리였다면, 웹진은 안내서를 웹상에 부여된 주소로 출판하여 배포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산책과 여행에서 가이드를 참고하듯, 협력과 공생을 바탕에 둔 함께하는 ‘큐레토리얼’에 대한 가이드도 각자의 질문과 관심사에 따라 방문하고 이탈하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를 만들고 배포해보길 바랍니다. 

 

실라버스 하이퍼링크 가이드
05. 김윤익

우리의 제약 

스마트폰

2009년 한국에 출시된 아이폰 3입니다.
변화는 스마트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대중화 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의 경로를 알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공간을 다룹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되면서 우리는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적 제약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서울이라는 시공간으로 좁혀 이야기하자면, 서울 사대문 안 바깥은 미술을 전시하기도, 찾아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은 지도를 이용해 바깥으로 사람을 이동시키고 불러모으는 그림을 우리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작업과 전시를 선보일 공간을 고려할 때, 바깥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방과 후 맥도날드》의 경우, 외대 정문 앞 맥도날드 내부 테이블에 작품을 설치한 전시로 전시의 이동성이 대폭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은 기회를 마련합니다.
우리는 이미 게임처럼 스마트폰을 그리고 인터넷 환경을 사용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좋아요 게임을, 지도에서는 좌표 이동의 게임을 수행하고 있죠. UI/UX에서도 게임의 느낌이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미술도 게임처럼 다른 방식의 조직과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반지하라는 공간의 경우, 일종의 롤 플레잉을 기반으로 전시 공간이 운영되었습니다. 작가는 익명으로 작품을 선보이며, 대학 졸업 후 포트폴리오에만 머물렀던 작업을 공간에 펼쳐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비디오 릴레이 탄산》의 경우, 장소 상관 없이 상영 작가가 다음 작가를 추천하며 비디오를 릴레이로 상영했습니다. 영상은 어디서든 상영할 수 있었고, SNS에 공지를 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각자 컨셉이 있는 공간을 운영했고, 게이미피케이션 스마트폰으로 뭔가 게임처럼 할 수 있다는 방식이 이상한 공간을 내 마음대로 운영해볼 수 있게 했습니다.

 

플랫폼

플랫폼(platform)은 정보를 유통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여러 혹은 소수의 플랫폼을 오갑니다. 플랫폼은 정보를 유통하고, 우리는 플랫폼을 오가며 업로드 된 수많은 정보를 조합하고 연결하며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인 생산자 모임의 경우, 2010년대에 아티스트와 큐레이터가 모여 여기저기서 공유된 문제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아티스트 피, 여성, 장애인, 퀴어 소수자 인권, 성폭력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했습니다.

 

 

제약과 함께 하기

커뮤니티

개인 단위에서 우리는 개인에게 주어진 공간적, 기회적, 정보적 제약을 살피며 스마트폰이 주어졌을 때 어떠한 상상력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 개인이 모였을 때 형성되는 커뮤니티 단위를 살펴봅니다.
미술 씬에 커뮤니티가 있었을까요? 만약 있다면 어떠한 제약이 있었을까요?

 

자율성

사실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코믹콘의 경우, 만화(comics)라는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랑하고 소비하고 공유하고 유통하고 스타가 만들어지고 직업이 생깁니다. 앞서 언급한 내비게이션 즉 이동성에 의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미술 씬 안에서는 파이의 경우, 서브 컬쳐 기반의 작업만을 전시합니다.《굿즈》의 경우, 미술 안에서 굿즈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아트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인 개체를 굿즈로 보고, 굿즈화 된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다양성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수용 가능한 문화를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루이즈더우먼의 경우, 여성 창작자들이 모여 여성주의 시각을 바탕으로 서로의 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했습니다. 담론적으로는 페미니즘, 서브컬처, 퀴어 관련 이야기를 담은 전시와 프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

 

비평

공간이 있고,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면서 이를 함께 나눌 장소를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틱-칼의 경우, 미술 잡지와 언론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글을 기고할 수 있습니다. 비평글을 읽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가고 다시 이야기하는 문화가 활성화되기도 했습니다.

 

미술

미술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 씬 안에서 미술의 윤곽이 어떻게 움직이며 변화했고 가시화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동성

《퍼폼》의 경우, 《굿즈》 이후 퍼포먼스를 활발히 유통시켜보자는 생각 아래 등장했습니다. 퍼포먼스라는 비물질적인 미술 작업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고 사회에 유통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취미관》의 경우, 일본의 만다라케 상점에 영감을 받아 일종의 현대미술 만다라케 상점을 운영하는 전시였습니다.

《더스크랩》의 경우, 동일한 인화방식과 크기로 프린트한 사진 작업 1,000여 점을 쇼룸 형태의 전시장에서 전시, 판매, 유통한 행사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의 작품의 형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공감대를 만들면서 미술을 친근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지속성

팬데믹 이후 물리적으로 작업과 전시를 구현할 수 없게 되면서 디지털 큐레이션, 프로젝트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집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미술 씬 안에서도 전시를 게임처럼 접근할 수 있게 되었죠.

《던전》의 경우, 전시로 볼 수 있지만 게임과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피지컬 게임과 같죠. 내가 전시장에 가서 뭔가 수행을 하고 어떤 보상을 얻습니다. 여기서 피지컬을 지우면, 미술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방식으로 전환(convert)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힌터랜드》의 경우, 필 A. 닐(Phil A. Neel)이 『힌터랜드: 미국의 계급과 갈등의 새로운 풍경』 책에서 그리는 ‘배후지’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전시로, 이미 현실화 된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형성된 지리적 영역이 파생하는 계급적, 정치적, 정서적 격차”를 더 미래의 시간대로 보내 상상을 펼쳐낸 온라인 전시였습니다.

미술 씬 안에서 ‘배후지’를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재편된 지리적 영역을 점점 중심지 바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전시 공간으로 치환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시의 방식들은 사실 우리가 모두 배후지로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배후지 환경에 맞춰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등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확장성

현대미술을 조롱하거나 이게 왜 미술인지 묻는 영상이나 댓글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왜 조롱거리가 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간주될까요?
미술이라는 매체는 왜 다른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호응과 공감을 얻지 못할까요?
페어 바깥의 예술은 비즈니스가 되지 않을까요?
스마트폰 등장 이후 미술의 맥락은 왜 삶의 영역으로부터 먼 곳에 놓인 것처럼 느껴질까요?

사회가 이미 배후지의 맥락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봅시다. 우리는 플랫폼 경제라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있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목적지까지 자율주행차를 타고 나아갑니다. 그 과정 안에서 경험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죠. 달리 말하자면 유튜브에 접속하면 검색하기 전에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것을 스크롤 하며 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올라타있는 경험과 비슷하죠. 우리는 같은 것을 봅니다.

다른 것을 보고 싶어도 개별적인 것을 볼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게이미피케이션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이 활동 경쟁적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배후지로 밀려나간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가이드를 읽고 있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은 접속 기록이라는 데이터를 데이터 센터에 전송합니다. 다시 접속한 인스타그램은 우리에게 유사한 정보를 띄워줄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계정을 만들었을 때 모두 이에 동의했습니다. 데이터 노동을 수행하는 대신 플랫폼이 주는 서비스를 받기로 했죠.

기술은 보다 편리한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겠지만, 개별성, 다양성, 독립성을 축소시킵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구글과 같은 대기업에 제공하고 있고, 알고리즘 안을 맴돕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미술은 개별성의 향연임을 설파했으나, 현재의 시스템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집단화 합니다.

기술과 결부된 미술의 영역 안에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따져 본다면, 우리는 갤러리에 소속되지 않아도,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도 플랫폼 서비스를 활용하여 틈새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화의 그물 안에서 경향으로 통합되면 개별성, 다양성, 독립성은 납작해지고 개별적 깊이는 은폐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개별을 살펴보기

신생과 독립

대안 공간 이후, 2010년대에 새롭게 생겼다(新生)는 뜻의 신생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간 앞에 붙은 새로 생겼다는 뜻은 사실 텅 빈 말입니다. 어쩌면 일종의 경계를 드러내는 말일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공간이지만, 대안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죠.

신생 공간은 전체적으로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았고, 공간은 쪼개져 있거나 복층이거나 화장실이 없거나, 폐공장 건물이었습니다. 공간의 지리적 조건이나 형태 자체가 제약이 되었죠. 대안 공간처럼 기존의 무엇에 관한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주어진 제약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생 보다는 독립(獨立)이라는 말로 공간 앞을 수식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서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안

한국 현대미술 씬에서 대표적인 대안 공간 중 하나였던 쌈지스페이스의 개관 20주년이자 폐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 입니다.

전시의 제목 ‘무서운 아이들(Enfant Terrible)’은 기존 개념과 체제를 포함한 질서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의 자유와 패기를 상징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 루프, 아트스페이스 풀, 사루비아 다방 등 많은 대안공간이 생겨났고, 공간에서 ‘무서운 아이들’을 발굴했으며, 스튜디오, 국제교류, 전시 프로그램 측면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시스템은 기존 제도로 편입되었습니다.

해당 전시 리플렛에는 “이제 대안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대안은 현재의 우리에게 제도가 되었습니다. 몇몇 대안공간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실험이 더이상 실험이 아닌 현재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며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까요?

 

시스템과 문화

아시아프
2008년 청년작가의 작품 소개 및 판매를 목표로 첫 막을 올린 아시아프(ASYAAF) 입니다. 미술 대학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777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당시에 작품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작품을 사는 경험을 문화로 즐기는 것보다는 미래의 작품 값을 기대하는 투기적 요소가 저변에 놓여있었습니다.
2024년 현재 작품의 값은 많이 올랐을까요? 참여 작가는 미술계에서 활동 중일까요? 작품은 소장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요?

공장 미술제
1999년 미술 대학의 학벌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조망을 목표로 첫 선을 보인 공장미술제 입니다. 2012년에는는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제 2회 공장미술제가 개최되었습니다. 본 행사를 기점으로 ‘아티스트 피(artist fee)’에 대한 논의(1)(2)가 시작되었고, 그에서 나아가 미술계 시스템에 관한 논의로 확장되었습니다.
페어로 예시를 든다면, 본 페어가 학생을 위한 행사인지 또는 미술 시장의 외연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인지와 같은 논의처럼 기획자/작가/공간/페어에 대한 역할 연구와 체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동 30번지

2006년 인천 중구 사동 30-53번지 버려진 집에서 개최된 양혜규 작가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입니다.
스마트폰 즉 네비게이션이 없던 당시, 전시를 보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첫 시도였습니다. 화이트큐브 바깥에서 다른 방식의 전시, 다른 형태의 작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언더 인테리어

콜렉티브 파트타임 스위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 《Under Interior》 입니다.
“미술대학 졸업 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전시 기회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전시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에서 콜렉티브의 활동과 본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시를 펼쳐낸 공간은 지하로, 노출 콘크리트 같이 정돈된 날 것의 벽이 아니라 날 것의 벽일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창작자의 운신의 폭이 얼마나 협소해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비합리적인 사회 구조가 지배하는 대도시 안에서 소속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표류하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삶의 유형을 프로젝트의 방식으로 차용한 것”으로, 전시와 그 스테이트먼트(statement)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어떤 것이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장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예술가에게 장소, 대안 공간이나 화이트큐브가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제약 안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장소의 제약과 운영 시스템

800/40
800/40은 두 명의 작가가 개인 작업실을 전시 장소로 오픈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5명의 기획자와 작가가 공동 운영했습니다. 서울에서 보증금 800에 월세 40만원에 구할 수 있는 특정적 환경의 공간으로, 해당 조건을 전시 공간의 이름이자 창작 환경의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B½F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계급의 상징적 환경이기도 한 반지하라는 환경을 전시의 장소이자 공간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스스로를 “현대 시각예술인을 위한 ‘오픈베타공간’으로 지칭했으며, 미술대학을 졸업한 공간 관리자가 작업을 진행할 실질적인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탄생한 공간”입니다. 이에 따라 익명의 작가가 주로 전시의 전 단계, 임시 전시, 프로젝트의 형태를 선보였으며, 작업을 실행하고 경험해보는 곳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두 사례를 비롯하여 413 BETA 또한 작업실 임대료가 높고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 작업실을 꾸리고, 그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소적 제약을 운영 시스템으로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시스템적 제약, 서울이라는 도시의 제약, 미술 씬의 제약, 소외된 담론과 문화의 제약 등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그 자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시스템과 전시가 신선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실험적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제도와 기관으로 소환됩니다. 기관이 아닌 공간에서 단발성 프로젝트 보다는 완결된 형태의 개인전이 개최되고 미술관으로 빠르게 향합니다. 이 시간이 빨라질수록 성장을 위한 유보의 시간도 짧아지며 창작자는 자신의 스펙트럼을 증명해야합니다. 장소와 결부되어 흥미로워 보였던 것이 공적 아젠다(agenda)를 제시하는 미술관에서 전시될 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함께하는 큐레토리얼

탈중심

기획에서 탈중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탈중심은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드는 손들의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하는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만드는 방법을 시도할 때, 기획서를 제외하고 함께 모일 수 있는 방법과 주체성을 발휘하도록 마련할 수 있는 판은 무엇이 있을까요?

 

대시보드화

413 BETA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기입해놓은 웹사이트이자 노션 대시보드 입니다.
– 작은 단위의 기회 만들기
– 협력자와 함께 운영하기
– 개방적인 공간되기를 공간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다양한 창작자와 프로젝트를 수용하기 위해 대시보드라는 시스템 안에서 공간 사용 매뉴얼을 배포합니다. 이는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하나의 틀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협력의 방법과 범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힌터랜드

미디어 아트, 웹 아트에서 한 발 나아가 디지털 큐레이션의 영역을 상상해봅시다.
미술이 게임이 된다면, 미술을 둘러싼 프레임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요?

PACK 기획팀이 TRPG 플레이를 통해 빚어낸 힌터랜드의 세계 설정을 미술가, 소설가, 음악가, 3D 환경 디자이너와 공유해 구현한 온라인 전시 힌터랜드(Hinterland) 입니다.

제작 단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세계관 및 배경설정 문서를 만들고 공유합니다.
독점, 감시, 자연 착취로 특징 지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배후지에서 자라날 미래의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원생대 말 에디아카라기의 원시적 지구의 모습과 겹쳐냅니다.

2. 읽을거리를 공유합니다.
The role of symbiosis in the first colonization of the seafloor by macrobiota: Insights from the oldest Ediacaran biota (Newfoundland, Canada), Duncan McIlroy, Suzanne C. Dufour, Rod Taylor , Robert Nicholls
Collectivizations, Jonas Staal
Neofeudalism: The End of Capitalism?, Jodi Dean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DAOs)

3. 아이디어와 리서치를 공유하며 기획을 빌드업합니다.
TRPG를 하며 게임을 하듯이 상상을 이어나갑니다. 평온한 한 해라는 게임을 이용했으며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재밌습니다.

4-1. 창작자와 협업하여 아이디어를 시각화 합니다.
기획, 콘셉, 3D 모델러, 문학가, 예술가 등 여러 제작자 사이를 오가며 공동의 협업물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구축한 기획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하며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공유되어야 합니다.

4-2. 문학가와 협업하여 트리트먼트를 작성  및 공유하고 구체화 합니다.
공유한 트리트먼트를 바탕으로 의견을 주고받아 세계관을 그려갑니다.
이는 힌터랜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23세기 인류의 다채로운 가치관, 성향 그리고 험난한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식과 원동력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SF 단편소설 작품으로 선보였습니다.

4-3. 창작자 간의 협업을 통해 작품화 합니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3D로 제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설계도를 구현하는 일이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환경을 이해해가며 공동의 완결 지점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5. 과정을 고려하여 전시 형식을 상상하고 적용합니다.
팬데믹 당시, 수많은 온라인 전시가 존재했고 이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후 위기는 지나간 일이 아니며, 팬데믹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그때의 변화는 지금보다 더 크고 빠를 것입니다.
다만, 디지털 전환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디지털 환경의 조건을 현실과 1:1로 사고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며, 경험을 디지털 문맥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온라인, 디지털로 작업을 선보이고 전시를 만든다면 어떤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힌터랜드가 놓인 웹사이트는 읽을거리의 흐름에 주목했습니다.
힌터랜드 1.0은 23세기 인류의 모습을 재현한 3D 전시관, 아카이브 웹사이트로 구성되었으며, 힌터랜드 2.0은 이야기를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게재된 ‘이미지 맵’을 통해 전개했으며, AR 기술을 활용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에 가상의 풍경을 ‘투영’하거나 ‘중첩’했습니다.

 

Network THE OVEN

도시 간 연결을 통해 독립예술 생태계를 활성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로, Studio150(방콕), Tenthaus(오슬로), Gudskul(자카르타), 413BETA(서울)가 함께 결성했습니다.

“Network THE OVEN은 23년 6월 노르웨이 모스의 옐로이섬에서 개최된 비엔날레 Momentum 12: together as to gather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엔날레 감독 Tenthaus는 비엔날레의 부제 ‘together as to gather’의 의미를 조직 방식에도 적용했으며, 참여자들이 비엔날레 주최 측과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과 결과물을 규정하길 바랐습니다.
비엔날레는 종결된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며 비엔날레 조직 방식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었습니다. Studio 150은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만들고 싶은 것을 제안해나갔고, Gudskul은 밤이면 작은 광장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고 사람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찾은 역할이었고,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움직임을 만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상황에 이를 대입해볼 때, 우리는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호하게라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킵니다.「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방식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가능할까?」 김윤익, 월간미술 Curators Voice & Critiques

Network THE OVEN은 비엔날레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 커뮤니티의 예술 생태계에서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을 위한 협력적이고 대안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되었습니다.

물론 지원사업과 여러 큰 행사로 분기를 나눈 연간 스케줄에 시달리는 한국 미술씬의 타임라인을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뒤로 보내고, 기존 방식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호흡, 내 호흡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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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및 편집 | 김윤익, AAD 백지윤
디자인 | AAD 방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