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①]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좋아하고 잘하는 일〉 – 1부

2022년 12월 9일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①]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1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X 시각예술가 송수희

 

 

송수희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기획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수희입니다.

정지혜 님, ‘사적인서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정지혜

저는 원래 출판 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다음에 서점원으로 전직을 했는데, 서점원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책을 만드는 것보다 파는 쪽이 훨씬 더 저랑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내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수희

지혜 님이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정지혜

제가 일하던 서점의 톤 앤 매너가 건조한 친절이었어요. 이건 아마 다른 서점도 다 마찬가지일 텐데요. 서점이라는 공간이 책을 안 사고 구경만 하고 나갈 수도 있는 곳이다 보니까 옆에 가서 말을 거는 행위가 손님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손님들이 찾으면 친절하게 응대하지만, 그전까지는 건조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게 보편적인 톤 앤 매너예요.

저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보니 서점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싶었어요. 손님이 카운터에 책을 갖고 오면 “이 책 진짜 재밌다.”라든지 “이 책 읽으시고 재밌으시면 다음에 이 책 읽어보세요.”라든지. 이런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내 서점을 하게 된다면, 좀 더 많이 손님들과 교감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싶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헌책 잔치” 행사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책을 팔고, 친구가 하는 서점의 1일 책방 지기로 손님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적극적인 방식으로 손님들을 만나 보니까 더 빨리 내 서점을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고민할 거라면 빨리해보자 생각했어요. 빨리해보고 안 되면 다시 취업을 하면 되니까 실패하더라도 빨리 실패하자고 생각해서 29살에 창업을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어서 내 서점을 시작했고, 그게 “사적인 서점”의 방식이 되었어요.

 

 

송수희

책을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을 모두 경험하셨는데, 책을 만들 때는 어땠나요?

 

정지혜

저는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책을 좋아해서 정말 많이 읽었어요. 초중고 내내 백일장에 나가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일찍 진로를 정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기도 했는데 대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어요. 책을 좋아하니까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돼야지 생각해서 첫 직장을 선택했고, 편집자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편집자는 의사소통을 잘해야 하는 직업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글을 잘 쓰고 기획을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편집 일을 해보니 그것보다 의사소통이 더 중요했어요. 마케팅팀과 디자인팀의 갈등이 있을 때, 작가와 회사 사이에서 제목에 대한 갈등이 있을 때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제가 그걸 조율해야 하는데 저는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의사소통은 자신 있지만, 갈등을 조율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리고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는 건 너무 재밌는데,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어요. 나는 이 일이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어린 시절 부터 꿈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재밌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계속 편집자로 일할 생각도 있었는데, 책은 만들어 봤으니까 이번엔 파는 걸 해보자 싶었어요. 만약 책을 파는 일이 적성에 안 맞더라도 나중에 다시 편집자로 돌아왔을 때 그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송수희

지혜 님은 책을 파는 일이 재밌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책을 파는 일의 매력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정지혜

제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면 되니까 납득할 수 없는 걸 해야 할 필요가 없었고,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편집자로 일할 때 좋았던 부분도 책을 만드는 것 보다 사람들에게 책을 전하는 부분이었어요. 저는 책을 팔면서 제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나눌 때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동시에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것,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소개하거나 만드는 행위를 정말 싫어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서점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힘줘서 소개하고 팔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이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송수희

‘사적인서점’ 이름의 의미에 대해 듣고 싶어요. 책을 읽는 행위는 굉장히 사적이잖아요. 그렇게 사적으로 혼자서 하는 독서를 지혜님께서 관계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정지혜

이 서점이 저라는 사람에게서 출발했기 때문에 “사적인”이라는 단어를 서점 이름으로 쓰게 되었어요.

‘사적인 서점’에서 하는 모든 일은 제가 재밌게 할 수 있는지, 제가 하고 싶은 일인지가 중요해요. 저의 사적인 즐거움과 기준들이 확장돼서 다른 사람과 연결될 때 저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저에게 “사적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냥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사적인”이라는 말에 비밀스러운 의미도 있고 개인적인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이곳이 손님들에게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공간, 책 처방을 받으면서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공간, 나만을 위해서 맞춤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공간임을 말해주는 단어예요.

 

 

2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이: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
‘사적인서점’ 운영자이며 좋아하는 마음이 다음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 기대감이 인생의 파도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튼튼한 밧줄이라 믿고 있다. 쓴 책으로는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가 있다.

인터뷰어: 송수희 작가, 기획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이론과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시각예술분야에서 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며 2021년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 25부작;』에 선정되어 송파구에 위치한 성내천 터널에 미디어아트 작품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를 설치하였다. 단편소설 「히카리」로 〈21세기 문학〉에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며, 『교산기록』, 사운드아트 「영영」 등의 작품을 통해 공간과 장소 속의 개인의 서사에 관해 작품을 진행해오고 있다.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인터뷰 시리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 인터뷰 시리즈 사진 촬영은 배우 문학진 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