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②]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대화로 연결하기〉 – 2부

2022년 12월 16일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2부 “대화로 연결하기

사적인서점 대표 정지혜 X 시각예술가 송수희

 

 

송수희

사적인 서점의 대표 프로그램 ‘책처방’을 소개해 주세요.

 

정지혜

‘책처방’ 프로그램은 손님하고 책 처방사가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 후에 손님에게 딱 맞는 맞춤 책을 처방해 드린다는 콘셉트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먼저 손님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어요.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고민을 나눌 수도 있어요. 손님이 나누고 싶은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면 저는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고 질문하고 손님이 집에 돌아가신 후에 그 대화를 떠올리면서 이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이나 이분에게 지금 가장 잘 읽힐 것 같은 책을 한 권 정해서 편지와 같이 보내드립니다.

책처방이라는 단어를 쓰다 보니까 많은 분이 독서 치료 프로그램이라고 오해를 많이 하세요. 저는 심리학이나 상담을 전공하지 않았고 ‘책처방’ 프로그램을 독서 치료의 개념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손님과 좀 더 가까이 소통하면서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어요.

 

송수희

책처방 프로그램은 어디서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되었나요?

 

정지혜

덴마크의 행복 비결을 취재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덴마크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주치의가 있데요. 그 주치의가 한 동네에 자리를 잡으면 은퇴할 때까지 몇십 년 동안 진료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20대, 30대, 40대 나이가 드는 동안 계속 한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게 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을 수도 있어요. 단순히 신체 건강만을 케어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최근에 정신적으로 어떤 힘든 일을 겪었는지, 오래 사귄 동네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주치의가 있어서 그게 행복 지수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 책 속에 있더라고요. 그 내용을 보고 “독서 주치의”라는 개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서점 주인이 한 독자의 독서 주치의가 돼서 이 사람이 그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있고, 이 사람의 최근 일상이나 근황을 알고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책도 소개해 주고. 이런 방식으로 같이 책을 읽으면 너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독서 주치의를 떠올리다 보니 처방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책처방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됐어요.

 

 

송수희

책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정지혜

저의 컨디션이 생각보다 참 중요하더라고요. 지금까지 6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고민 상담하시는 분이 정말 많아요. “힘든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면 힘들어지지 않아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예전에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즐겁고 재밌게 대화를 했어요. 그런데 1~2년 전쯤 제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 때 대화를 하다가 처음으로 ‘나 지금 이거 못 들을 것 같아’라고 느꼈어요. 손님이 비용을 내고 이야기하러 오셨는데 그런 마음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게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요.

최근 제 건강상에 문제로 책처방 프로그램을 한두 달 정도 쉬어가고 있어요. 몇 달 동안 예약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서 얼른 다시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마음으로 진행하는 건 저에게도 괴롭고 오시는 분들에도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쉬어가는 기간이 저한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마음을 나누면서 대화하는 일이다 보니 감정을 정말 많이 써요. 그래서 제가 잠도 잘 자야 하고 스트레스도 없고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만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송수희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면서 만난 많은 참여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정지혜

책처방 프로그램 안에서 지금까지 약 1,500명을 만났어요.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이전에 오신 분이 다시 오시면 이전에 나눴던 50분간의 대화가 다 기억나요. 많은 분들 중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자면, 5년 전 책처방에 참여하신 분 이야기를 말씀드릴게요. 그분은 대학교 1학년이었어요. 원래 그림을 전공하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른 걸 선택했는데 그 혼란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셨어요. 그러고 나서 5년이 지나고 그분이 취직했다고 하면서 책처방을 다시 신청하신 거예요. 제가 5년 전에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라는 책을 처방했는데, 책과 영화에 관한 책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복수 전공으로 영화를 배우고 관련 책도 많이 읽으면서 인생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고, 저에게 감사하다고 다시 오신 거예요.

전 씨앗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쓰는 책, 나눴던 대화, 처방해 드리는 책들이 사람들에게 닿아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1년 뒤에 와서 안부를 전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2년 뒤, 3년 뒤, 4년 뒤에 오시는 분도 계세요. “그때 소개받은 책 때문에 이번에 이런 걸 하게 됐어요”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처방한 여행책을 읽고 태어나서 처음 해외여행을 하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하신 분도 계셨어요.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냈을 때, ‘내가 정말 큰일을 하고 있구나,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람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서점을 6년째 운영하다 보니까, 이전에 왔던 손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송수희

‘사적인서점’에서 책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워크숍, 사인회,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어요. 그중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정지혜

최근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책과 연계한 전시회를 진행했어요.

설은아 작가님의 전시를 담은 책이에요. 전시 내용은 공중전화 부스가 있고 이 부스 안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남기면 바깥에 있는 전화기에서 랜덤하게 그 내용이 나오는 거예요. 불특정 다수가 그 얘기를 들어주는 거죠. 작가님께서 이 전시를 몇 년 동안 하면서 10만 통의 전화가 모였대요. 그 많은 내용 중에 추려서 이렇게 책으로 낸 거예요.

책 안에 사람들이 남겼던 메시지들이 담겨 있는데 별별 얘기가 다 있어요. 내밀한 비밀과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전화에 털어놓은 거예요. 전시 현장에서 작가님이 본 사람들의 모습은 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데요. 전시가 끝나고 전화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겉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구나 생각을 하셨대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희 서점에서 작가님의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이전 전시 때 썼던 전화기를 저희 서점에 비치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려면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부스를 놓아야 할 텐데 부스를 설치할 수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저희는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100명의 수신인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어요. 전화도 편지도 수신인이 있어야지 전해질 수 있는 매체잖아요. 1시간에 네 분의 손님이 입장하고 전시를 구경한 다음에 편지에다 자기 속마음을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3일 동안 전시를 했는데 토요일에 오신 분의 편지를 일요일에 오신 분들한테 보내드리고 일요일에 오신 분의 편지를 월요일에 보내드렸어요. 내가 쓴 편지가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사람에게 가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 참여하신 분의 후기를 들었는데, 속마음을 털어놓은 사람도 있고 이걸 받을 사람에게 ‘당신이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남겨주신 분들도 있었다고 해요. 전시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전시가 끝난 후에 손님들이 편지를 통해 연결되는 지점이 즐거웠던 프로그램이었어요.

 

 

송수희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정지혜

저는 꿈을 빨리 달성해버렸어요. 그래서 40살이 되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책으로만 이어진 삶을 계속 살았어요. 이렇게 사는 게 재밌고 즐겁지만 제 인생에서 이쪽 세계만 경험하는 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세계의 저도 보고 싶거든요.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저는 뭔가를 소개하고 알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40살에 어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업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생각해 봤어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요즘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제가 “러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러시”에서 일하면 정말 잘 팔 수 있어요. 제가 인생을 80살까지 산다면 40살에 딱 전반기가 끝나잖아요. 후반기는 이 전반기의 정지혜와는 완전 다른 새로운 정지혜로 살아보고 싶어요! 음, 근데 계속 여기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인터뷰이: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
‘사적인서점’ 운영자이며 좋아하는 마음이 다음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 기대감이 인생의 파도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튼튼한 밧줄이라 믿고 있다. 쓴 책으로는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가 있다.

인터뷰어: 송수희 작가, 기획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이론과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시각예술분야에서 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며 2021년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 25부작;』에 선정되어 송파구에 위치한 성내천 터널에 미디어아트 작품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를 설치하였다. 단편소설 「히카리」로 〈21세기 문학〉에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며, 『교산기록』, 사운드아트 「영영」 등의 작품을 통해 공간과 장소 속의 개인의 서사에 관해 작품을 진행해오고 있다.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인터뷰 시리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 인터뷰 시리즈 사진 촬영은 배우 문학진 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