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⑤] 시각예술가 정이지 〈창작을 위한 만남〉 – 1부

2023년 1월 5일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⑤] 시각예술가 정이지 〈창작을 위한 만남〉 – 1부
시각예술가 정이지 X 시각예술가 유지영

 

 

유지영
정이지 작가님, 안녕하세요. 일단 자기소개 질문을 드릴 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소개에 대한 질문이 항상 어렵더라고요.
작가님의 작업과 일상에 대해 각 세 가지 키워드를 사용해서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이지
제 작업에 대한 키워드로는 관계, 페인팅, 그리고 멜랑꼴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았던 순간들은 곧 지나가는 것이기에, 좋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감정을 페인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 누군가 울고 있지는 않지만 약간 서늘하고 슬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제 일상의 키워드는 집, 집, 집입니다.(웃음) 정말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잘 나가지 않고,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안정감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유지영
작업에 대한 키워드로 멜랑꼴리를 뽑아주신 게 약간 의외에요. 하지만 작가님의 정물화를 보면 오브제가 항상 두 개씩 등장하면서도 텅 빈 공간에 놓여있곤 하잖아요. 그래서 두 사물이 같이 있지만 다소 허전한 기운이 느껴지는 지점이 말씀해 주신 멜랑꼴리적 감상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넘어가자면, 작가님이 2인전을 비교적 자주 하셨잖아요. 양윤화 작가님과의 《이곳에선 모든게 자연스럽지 않으면 이상하다》(2022, 시청각 랩), 조효리 작가님과 《The Seasons》(2022, 디스위켄드룸), 이현우 작가님과 《찰나의 순간》(2022, 오브제후드) 등 여러 2인전에 참여하셨는데요. 2인전은 개인전 만큼의 품이 들면서도 다른 작가님 한 분과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일반 기획 단체전과는 또 다를 것 같아요. 2인전을 하실 때 어떤 부분을 좀 더 신경 쓰시고 경험하셨는지, 2인전 만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정이지, 양윤화 2인전 《이곳에선 모든게 자연스럽지 않으면 이상하다》 (2022, 시청각랩) 

 

 

정이지, 조효리 2인전 《The Seasons》 (2022, ThisWeekendRoom)

 

정이지
주로 2인전을 함께 한 작가님들이 대부분 저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분들이에요. 그 사람을 비교적 깊이 알고 작업을 긴 시간 지켜보면서 나와 어떤 부분에서 관계될 수 있을지 연결고리가 상상이 가능하게 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작업에 대한 대화도 나누며 두 사람의 작업이 같이 있을 때 돋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은 보완되어야 할지 공부하는, 조금은 긴 스터디처럼 느껴지곤 해요. 그런 계기로 상대 작가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 사심을 채우는 자리인 것 같아요.

 

 

유지영
전시 준비 과정에서도 그렇고 작가님 작업에서도 말씀하신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한 지점으로 보여요. 전시를 통해 다른 작가와의 관계가 발전하는 등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작가님 작업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혹은 찰나를 화폭에 담다 보니 작업을 하면서 실제로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거나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도 경험하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정이지
분명히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친밀한 동료 작가분들이나 친구를 그리기도 하지만, 가끔 접점이 전혀 없는 다른 작가분의 창작물을 보고 큰 매력을 느껴서 작업의 모델이 되어주실 수 있는지 연락을 드릴 때도 있어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걸 해내지?’ 하는 궁금증이 들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 작업을 빌미로 다가가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동경하던 만화가분을 만나 대화도 나누며 그분을 그리게 된 적이 있는데요. ‘나는 진짜 성공한 덕후다, 그림 그리기를 잘했다’ 싶었어요. 제가 엄청 내성적인데, 이렇게 작업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유지영
그건 작가님이 일방적으로 오래 지켜봐 온 관계잖아요. 이미 잘 알고 지낸 지인을 그리는 작업과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정이지
오래 알고 지냈던 지인들을 그릴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저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시각적 결과물을 통해 내가 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게 되죠.

유지영
그러면 모델이 된 지인이 작가님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의 피드백이나 모델이 아니었어도 오래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이 있을까요?

정이지 
처음 뵙는 분인데 제 그림을 보고 ‘저는 이 그림이 저 같아서 너무 신기했어요’라고 하신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꼭 생김새가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주변에서 듣고 작업을 보러 오신 분도 계셨고요. 근데 뵈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신기하면서도 재밌었어요.

 

2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이: 정이지 시각예술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적이고 친밀한 감정, 낭만적인 분위기와 여운을 그림으로 그리려 한다. 정물이나 풍경을 그릴 때에도 대상 자체에 대한 관심 보다는 그것이 그에게 사람들 간의 어떤 관계 혹은 특정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몇번의 휘두름으로 볕과 그늘, 여러가지 다른 질감, 인물의 인상, 대기와 시간대를 만들어내는 그리기의 즐거움 또한 작업의 중요한 동력이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Short Cut》(2019, 어쩌다갤러리2), 단체전 《THIS IS A FAVORITE WITH SUNSHINE》(2020, 의외의조합), 《That Has Ever Seen》(2020, 킵인터치) 등이 있다.

인터뷰어: 유지영 시각예술가
서울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유지영은 회화, 설치, 오브제를 통해 담는 것(틀)과 담기는 것(내용)의 관계를 다루며 시스템을 둘러싼 사용자의 욕망 구조를 돌아본다. 개인전 《시간들의 서랍(Closed Containers)》(2022, 리움미술관), 《Cupboard》(2021, ThisWeekendRoom)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시각 예술 분야 여성 예술인 네트워크 “루이즈 더 우먼(Louise the Women)”을 공동 창립하여 현재는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가 말하는 모임〉 인터뷰 시리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 인터뷰 시리즈 사진 촬영은 배우 문학진 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