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
AAD
‘보이스 디자인’ 모임의 참여자들은 연기 경험은 거의 없었지만 배우님과의 만남을 통해 집중해서 목소리를 내보고, 평소 일상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목소리의 색깔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을 진행한 것이 배우님께는 어떤 경험으로 와닿았나요?
서요한
그분들과 함께한 것이 저에게 잘 맞았어요. 기량 증진을 목표로 하는 자리는 압박감이 많아요. AAD에서 진행한 ‘보이스 디자인’은 참여하시는 분들이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 형성된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저도 함께 유연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연기이든 말하기이든 자기 자신답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2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 창작집단 예;고 ‘삶,사람,사랑’ 공연 장면
AAD
배우님께서 모임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두고 더 좋은 소리를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였어요. 이미 갖고 있는 목소리를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방향성도 함께 찾아볼 수도 있었고요.
‘보이스 디자인’의 모임 메이트로 활동한 경험이 배우님의 예술 활동에 변화를 가져왔나요?
서요한
요즘 몰입하고 있는 키워드가 있어요. ‘사소한 인식’이에요. 사소한 인식이 큰 변화를 유도한다는 생각에 몰입하고 있어요. 숨을 쉬고. 지금 서있는 바닥을 느끼고. 내 발바닥과 손바닥에서 일어나는 땀의 습도를 느끼고. 정말 사소한 것들에 집중해서 인식하는 거예요. ‘보이스 디자인’은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모임이었고 최근 제가 몰입하고 있는 섬세한 감각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커다란 것에서는 놓치는 것이 많아요. 하지만 사소한 것은 더 촘촘하게 인식할 수 있고 그 사소한 인식이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낼 거예요.
2022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 창작집단 예;고 ‘삶,사람,사랑’ 공연 장면
AAD
아주 작은 인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배우님께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해요.
서요한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으며 심리 상태까지 파악해 보려고 해요. 소리는 커뮤니케이션이에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연결이 중요해요. 이 생각은 어렸을 때 합창단에서의 경험으로 만들어졌어요. 합창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듣는 거예요. 많은 합창단원들이 같은 음정을 내고 있지만 누군가는 화가 난 듯 세게 소리를 내기도 하고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 소리들을 하나하나 듣는 것에 몰입하다 보니 목소리를 통해 말하는 사람의 현재의 심정과 성향까지 들여다보는 감각이 생겼어요. ‘보이스 디자인’ 참여자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피드백 드릴 때도 한 명 한 명 집중해서 듣고 최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드리고자 했어요.
AAD
모든 사람이 배우님 만큼 섬세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집중해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여다보면 더 좋은 소통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최근 배우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서요한
최근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서 ‘감각 인식 오류’라는 이론에 빠져있어요. 지금껏 정답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이론이에요. 내가 지금까지 꾸준히 쌓아 지렛대를 삼았던 표현의 감각에만 계속 몰입하기보다 반대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전보다 다채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각 인식 오류’ 이론이 담긴 F. Matthias Alexander(클릭 시 이동)의 책
『Constuctive Conscious Control of Individual』
AAD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서요한
저의 장점과 단점을 직면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동안 제 자신을 알면서도 조금은 흐릿한 눈으로 봐왔거든요. 단점을 알아도 괜찮아 보듬어주곤 했어요. 그게 분명 저에게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좀 더 냉정해지려고 해요.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관객이 알아챌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증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극의 등장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면 관객의 몰입도가 떨어져요. 관객이 극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데, 또 너무 쉽게 알려주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어요. 그 밸런스를 잘 잡고 싶어요.
인터뷰 현장
AAD
배우님의 올해 목표에 다른 배우분들 또는 다른 장르의 예술인분들까지도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배우님의 이야기에 자신을 대입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예술인의 성향이나 현재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술인들에게 필요한 모임은 어떤 것일까요?
서요한
제가 취미가 없어요. 그래서 취미 모임이 필요해요. 저는 뭘 하든 연기와 다 연결해버리곤 해요.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어느새 연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노래를 부르다가도 발성을 신경 쓰게 되고요. 공연처럼 누군가의 연기를 보는 취미는 더욱 즐기기 어려워요. 연기에 관한 생각이 개입하지 않는 취미를 찾고 싶어요. 요즘은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하루 만보 걷기에 도전하고 있어요. 취미가 없는 것은 예술인의 정신 건강에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모든 예술인 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취미를 갖기를 바라요.
걷다가 마주한 흑석동 야경
인터뷰이: 서요한 배우
무대 위에서는 뮤지컬과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대 아래에서는 예술 교육 콘텐츠 개발자, 지역기반 예술 프로젝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품이나 지역 이야기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에 녹아 들 수 있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