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모임 비하인드 ⑥] 시각예술가 이산오 〈사유를 담는 매체들〉 – 2부

2023년 4월 28일

인터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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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컨텐츠 제작 스터디’ 모임에서 작가님은 어떤 영상을 만들었나요?

이산오

일상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았어요. 일상 풍경 속에서 느껴진 시적인 상황을 포착하고 그걸 일본 소설처럼 풀어보고 싶어서 일본어 자막을 달았어요. 제가 ‘토니 타키타니’라는 일본 영화를 좋아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인데 상실과 고독에 대해서 다룬 영화에요. 제가 작업을 통해 계속 쫓고 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질문에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에요. 일본 소설과 영화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저도 그런 분위기의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어요. 

 

영화 ‘토니 타키타니(Tony Takitani)’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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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이번에 시작한 유튜브 채널명을 ‘걷는연필’이라고 지은 이유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유튜브 콘텐츠가 궁금해요.

이산오

산책에서 영감을 얻고 연필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서 유튜브 채널명을 ‘걷는연필’이라고 지었어요. 한국에 있는 일본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영상에 일본어 자막을 달아서 한국이지만 일본에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의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떡볶이를 좋아해서 떡볶이 투어 콘텐츠도 해보고 싶어요. 

 

산오 작가님 유튜브 채널 ‘걷는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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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컨텐츠 제작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산오

제 작업의 주 매체가 글과 그림이다 보니 주 매체 외에 다른 전달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팬데믹 이후 영상 콘텐츠가 많아졌다는게 실감되는게,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가면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꼭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영상을 직접 만들어보고 영상 툴도 다뤄보고 싶었어요.
저도 영상에 새롭게 도전하는 상황에서 모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모임 참여자분들에게 영상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드리기는 어려웠어요. 영상 속에 담긴 저마다의 시선을 공유하고 각자의 감각으로 서로에게 건강한 피드백을 하는 것이 이 모임의 목표였어요. 참여자들의 각기 다른 삶의 형태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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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과 인터뷰를 하다 보니 영상 제작이 쉽게 느껴지고, 브이로그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이산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여자분들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했어요.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보다 자기가 담고 싶은 내용에 집중하다 보니 흔들림 보정을 하지 않은 날 것의 영상이 만들어졌는데, 그것마저도 재밌었어요. 오히려 그 상황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특히 한 참여자분의 캠핑 영상이 기억에 남아요. 그 캠핑장의 여러 가지 소리들이 여과 없이 담긴 영상이었는데 저도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자유스러운 모임 분위기 덕분인지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 소통도 원활했어요. 

 

걷는연필 ’서울의 주말, 한국 편의점, 도시 산책’ 영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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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컨텐츠 제작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면서 작가님의 일상 또는 작업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이산오

일상 속에서 제 눈이 계속 카메라처럼 느껴졌어요. 이전에도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모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서 무언가를 더 선명하게 포착하는 감각을 갖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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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안에는 그 영상을 촬영한 사람의 시선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소소한 브이로그 안에서 한 사람의 시선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재밌어요. 특히 예술가의 시선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고요. 

이산오

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영상을 보면 각자의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져요. 작은 요소 하나하나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서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어요. 시각적인 요소에 예민한 편이다 보니 가끔은 특별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머리가 가득 차서 피로해지기도 해요.

 

걷는연필 ’서울 풍경, 지하철과 버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도시 산책’ 영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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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에서 벗어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산오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혼자 있을때 실컷 울어요. 울음으로 감정을 전부 쏟아내면서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울고 난 직후 고요해졌을 때 영감이 떠오르기도 해요. 진짜 울고 싶은데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몰입해요.

AAD

자신에게 잘 맞는 극복 방법을 갖고 있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이산오

요즘 친환경 미술재료를 연구하는 콜렉티브 ‘그린레시피랩’의 멤버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흙이 불에 구워져서 도자기가 되면 그게 폐기물로 분류되거든요. 그래서 흙을 굽지 않고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에요. 흙 보존제를 리서치해 봤는데 선행 연구 중 흙 보존제 관련 자료가 없어서 나무 보존 처리를 찾아봤어요. 단청 칠 재료 중에 들기름을 칠하는 방법이 있고 서민들은 보존을 위해 먹칠을 했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들기름과 먹물로 흙 보존 실험을 해봤어요.
최근 ‘그린레시피랩’이 서울대 파워플랜트에서 기획 전시 《공장놀이 RePlant》’에 참여했는데 그때 홍보 영상을 제가 만들었어요. ‘유튜브 컨텐츠 제작 스터디’ 모임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어요.

 

《공장놀이 RePlant》(2023,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68동) 전시 전경

 

AAD

올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산오

올해 9월에 서촌에 위치한 전시 공간 ‘무목적’에서 개인전을 해요. 전시를 잘 만드는 것이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개인전에서 친환경 재료연구를 반영한 작품과 공간 설치를 고려하고 있어요. 한번 쓰고 폐기되는 전시 소모품을 제작하지 않고 재활용으로 전시를 구성할 계획이에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도자기를 만드는 여러 가지 기술도 공부하고 있어요. 기쁘게도 좋아하는 것들이 동시에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하는 저의 삶이 참 만족스러워요. 

 

 

인터뷰이: 이산오 시각예술가
텍스트와 이미지가 발생하는 구조에서의 유사성을 발견하며 다양한 창작 언어를 이해합니다.
시와 드로잉, 입체를 오가는 작업을 통해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각 매체를 서로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언어들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csmf001 @cosmof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