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
AAD
예술 모임이 작가님의 예술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안다혜
예전엔 제가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봤어요. 모임 중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에 내가 잘 대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모임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모임이 잘 맞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요. 나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도 더 적극적이게 되었어요. 제가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어요.
게더 AAD Town에서 진행한 ‘지금 당장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모임
AAD
작가님의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안다혜
제 최근 관심사는 ‘산’이에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신작의 과정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길을 잃어버리는 수행을 하고 길을 잃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채집해요. 그 채집한 풍경을 작업실로 가져와서 그릴 수 있는 최대한의 정도로 묘사를 하고 낯선 풍경을 읽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디에 가면 길을 잃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산에 다니고 있어요. 도시의 길은 너무 익숙하고 대부분 잘 정비되어 있어요. 도시에서는 절대 길을 잃을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도시의 길은 대부분 다 이어져 있어요. 모르는 곳에 있어도 계속 앞으로 가다 보면 표지판이 나오고, 표지판을 따라가면 길이 나와요. 그런데 산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의심을 계속하고 있는데, 인공적 프레임이 없는 곳으로 가보고 싶어서 이런 작업을 시도하게 됐어요. 내게 익숙하지 않은, 내가 모르는 규칙이 있는 곳으로요.
길을 잃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어요. 산을 걷는 방법, 도시 밖에서 체력을 유지하는 방법 등, 이와 관련된 능력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러 산에 오르다 보니 등산에 중독이 되더라고요. 요즘 클라이밍을 하고 있어요. 산 정상까지 반드시 완등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지금껏 내가 갔던 길보다 조금 더 갈 수 있도록 신체적 레벨 업을 하고 싶어요.
안다혜, 길 잃은 풍경(2), 788×1,091mm, 종이에 과슈, 콘테, 2023
안다혜, 길 잃은 풍경(3), 788×1,091mm, 종이에 과슈, 콘테, 2023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제니 시집_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펠릭스 가타리_세 가지 생태학)
AAD
작가님의 신작이 이전 작업과는 어떻게 이어지는 건지 궁금해요.
안다혜
가족 이데올로기 또한 사회적 프레임의 한 종류이고 그 외에도 젠더적 프레임, 청년으로서의 프레임 등 그 모든 프레임들이 저를 겹겹이 싸고 있다는 생각해요. 그리고 작업을 고민할 때는 그게 더 선명하게 다가와요. 그전에는 가족이 중심 키워드였다면 지금은 어떤 프레임을 특정하지 않고, 다층적 프레임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바깥의 영역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신작을 출발했어요.
AAD
작가님께서 또 다른 예술 모임을 진행하게 된다면 어떤 모임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트 트레킹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안다혜
‘가족 생태도 그리기’ 모임도 제가 ‘가족 생태도’를 그리는 전체 과정을 압축해서 참여자분들과 함께 해본 거였어요. 이런 방법으로 지금 하고 있는 풍경 회화 작업도 함께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 그 상황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나누고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거예요. 물론 안전이 보장된 상태로요(웃음).
길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다 보면 땅 위에 낙엽이 쌓여 있고 그 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발이 쑥쑥 빠지기도 해요.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야 되고 거미줄이 얼굴에 걸려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정말 자연으로 꽉 차 있어요.
처음에는 무섭고 불편한데, 곧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요. 내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땅을 밟아서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상황이 됐을 때 마음이 편해지고 해방되는 느낌을 받아요. 이런 감각을 참여자분들과 같이 경험해 보고 그림을 그리면서 얘기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굴업도 트레킹
AAD
저는 지금 운동이 너무 필요한데 예술 활동을 하면서 운동도 되는 모임인 것 같아서 꼭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커뮤니티 활동이나 모임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여성 시각예술 네트워크 루이즈 더 우먼 멤버 활동을 지속하고 계시고, AAD 콘텐츠 기획자로도 활동을 하셨는데 이러한 커뮤니티나 예술 모임의 활동들이 신생 아티스트한테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안다혜
신생 아티스트도 활동 경력과 각자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활동을 막 시작할 때는 작업에 관해 소통할 수 있는 범위가 학교 인맥 뿐인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예술을 전공하지 않고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계세요. 창작자들은 ‘내가 예술 활동을 하고는 있는데 잘 하고 있는 걸까’ 고민을 하루에 수백 번씩 해요. 이런 요동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커뮤니티나 모임을 통해 예술 활동을 오래 지속하고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동시대에 같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작가님들의 작업과 관심사를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 동시대 창작자로서 나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할 때, 다양한 사례를 비춰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커뮤니티나 모임을 통해 여러 가지 사례를 나눌 수 있어서 도움이 돼요.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은 창작자들 간에 서로 응원해 주는 거예요. 오랫동안 함께 예술 활동을 할 사람들이고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돼요. 관객과의 만남은 창작자 간 지속적인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기되는 부분이 있어요.
신진 예술가는 작업에 관해 연구할 것이 많아요. 계속 새로운 것을 찾고 시도해야 하는 시기에 커뮤니티나 모임이 그런 역할을 충족시켜 주기도 해요.
루이즈 더 우먼에서 위키숍 진행하는 모습
AAD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어요. 작가님의 올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안다혜
올해의 목표는 신작 시리즈를 견고하게 연구하고 제작하는 것이에요. 신작 시리즈를 처음으로 발표하는 전시가 이번 달에 있어요. 영등포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문래역 근처에 있는 ‘술술센터’에서 3인전으로 신작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이 전시를 통해서 내가 생각한 신작 시리즈의 방향성이 유의미한지 검증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방문해 주시는 분들과 작품에 대한 얘기를 깊이 나누고 싶어요.
인터뷰이: 안다혜 시각예술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혼용한 설치미술을 매개로 정상성이 만든 폐쇄적인 시공간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부조리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정상성이 지배한 현실의 부조리, 혐오, 불안을 적극적으로 감각하고 본인의 삶에서 탈 정상성의 생활을 시도하며 경험주의에 기반한 창작활동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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